스리랑카_여행 정보_2024년_(3)

by Dzforte

(2편에 이어)




10. 엘라 오디세이


스리랑카 여행에서 가장 잘한 짓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컨데 “엘라 오디세이” 예약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스리랑카 여행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엘라행 기차에서 오랑우탄에 빙의해 지랄발광을 하며 진화론의 증거를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것일 터인데, 일반 로컬 기차를 타는 순간 7시간의 관종질 지랄발광 오바쌈바쑈는 배틀그라운드 생존게임 7시간으로 변하게 된다. 일반 기차를 타는 순간 싸움을 엄청 잘하지 않는 한 바깥 구경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일단 명당 자리인 입구와 창가는 당연히 노련한 스리랑카 로컬 사람들의 공간이 된다. 사진을 포기하는 건 둘째치고, 앉은 공간도 없다. 입석 지옥에서 7시간 고생하지 말고 미리 ‘엘라 오디세이’ 예약하자. 당연한 말이지만 엘라오디세이는 무조건 2등석을 예약해야 한다. 1등석을 예약하는 바보짓은 하지 말자. 엘라 기차 코스는 창문이 열려야 가치가 있다.


20240627_115212.jpg 다윈은 옳았다.



11. 숙소


스리랑카 여행에서 가장 잘못한 짓을 하나 꼽는다면, 바로 숙소 선택이었다. 여행 시기가 성수기 직전이었던 터라 평점이 좋고 좋은 소문이 많이 난 숙소를 무리 없이 예약할 수 있었는데, 거의 모든 숙소에서 벌레 문제로 생고생을 했다. 화장실의 바퀴벌레, 말도 안 되는 수의 모기떼, 모기장을 뚫고 들어오는 정체 불명의 바삭한 벌레(바삭한 이유는 잠결에 머리를 긁다가 머리카락 속에서 발견해 손으로 눌러 죽였기 때문이다)까지. 하룻밤 사이 모기를 15마리나 잡았던 숙소도 있었다. 바퀴벌레가 나온 숙소에서는 20분 동안 사장님과 진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바선생님이 하수구에서 올라왔을 것이기 때문에 저 구멍을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사장님은 무지한 극동인이 딱하다는 눈빛으로 이들은 창문을 열고 들어왔을 것이며 하수구에선 선생들이 살 수 없다고 단호히 주장한 뒤 모기향을 뿌려주고 사라졌다. 파충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리랑카에서는 숙소에다 돈 아끼지 말자.


20240629_124406.jpg 그나마 괜찮았던 곳. 물론 숙박 앱에 있는 사진과는 너무 달라서 웃겼다.



12. 밥


스리랑카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바로 음식이었다. 밥이 맛이 없다. 대부분의 숙소에서 저녁을 제공하는데, 바깥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나은 편이었다. 워낙 입이 짧은 지라 각오하고 갔음에도 식사로 고생을 좀 했는데, 내 기준 최고 맛집은 갈레의 도미노 피자(사실 이것도 피자라고 봐야하나 논란이 좀 있긴 하다)였다. 거의 모든 스리랑카 숙소는 스리랑카식 서양 조식을 4달라에 판매한다. 빵, 쨈, 버터, 계란, 과일에 스페셜한 튀김이나 아무거나 하나 더 주는 콤보인데, 어딜 가나 스크램블이 진짜 놀랄 만큼 비리고 맛이 없으니 반드시 후라이로 달라고 하자. 하지만 조식은 반드시 먹어야 하며, 지역에 따라선(담불라와 같이 작은 마을) 저녁도 반드시 숙소에서 먹어야한다. 바깥엔 먹을 것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많이 내면 가능하겠지만, 일반적인 백팩커들의 기준에 맞는 가격대의 적당한 음식점을 찾기 매우 힘든 곳이 스리랑카다. 심지어 스리랑카는 KFC도 맛이 없다. 한식당 같은 건 콜롬보가 아닌 이상 꿈도 꿀 수 없다. 먹는 문제로 고생할 것 같아서 라면포트를 들고 갔는데 정말 알차게 잘 썼다. 마트에 가면 신라면, 불닭볶음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대충 짜파게티와 김치 정도만 챙겨 가자. 누군가 스리랑카를 간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쿠팡으로 라면포트를 보내줄 의향이 있다.


20240628_065956.jpg 고작 4달러에 이렇게 황송하게 차려주다니 ->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12. 그래서, 스리랑카?


스리랑카 관광업의 미래가 있을까. 산지는 네팔보다 못하고, 바닷가는 동남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불안한 정치는 더 불안한 치안으로 이어질 텐데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사기꾼은 많은데 즐길 거리는 부족하다. 서핑 매니아와 철덕후에게는 최고의 여행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무언가가 있는 곳일까. 여러 관광지를 다니는 내내, '굳이 이 수고를 들여 이 풍경을 봐야 할까?'라는 회의감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리랑카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여운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네곰보 슈퍼에서 나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 한국인이냐고 묻던 할아버지. 너희 나라에서 10년 넘게 일했다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유창한 한국말을 건네던 그분에게 나와 한국은 어떤 의미였을까. 마트 와인스토어에서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묻던 훤칠한 청년. “안녕 친구? 난 과음의 나라 한국에서 왔어. 난 아침에 사기를 당할 뻔했어. 취하고 싶으니 맥주와 술을 줄 수 있겠니?” 그는 빈정대는 나를 위해 창고 깊숙한 곳에서 라이온 아이스 맥주를 꺼내주었고, 아락 맛이 궁금하다 했더니 자기가 살 테니 마셔보라며 저렴한 사과 아락 한 병을 건네줬다(물론 사서 들고 왔고, 맛은 정말 끔찍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하다가 얼마 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그에게 나와 한국은 어떤 의미였을까.


갈레까지 버스 타고 간다니까 세상 모든 걱정을 다 끌어모은 표정으로 종이에다 ‘갈레로 데려다 주세요’라 적고는 내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주던 숙소 아저씨. 멱살잡이까지 할 뻔했던 공항버스 티켓보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우유값을 달라고 구걸하던 미치광이 할아버지. 4시간이 넘도록 나를 동화 속 괴물처럼 경계하다 프링글스 한 통에 굴복해버린 버스 옆자리 귀여운 꼬마 아이. 껄렁한 티켓보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왜 이 불쌍한 중국인에게 100루피나 더 내라고 하는 거죠? 정직하게 벌어야지. 부끄러운 줄 아쇼!(추정된 내용)”라고 쏘아붙이던 눈매가 사납던 아주머니.


훗날 다시 스리랑카에 가게 된다면 다 그놈들 때문일 거다.



20240701_125731.jpg 다음엔 반드시 오리지날 프링글스를 준비해둘게.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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