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Daydreaming

후회

시지프스의 눈덩이, 그리고 <프로이트의 의자>

by 이불

폭설 속에서

시지프스의 언덕 위로

눈덩이를 굴리고 있어


점점 더 커진 눈덩이는

정상에서

다시 아래로 구르고


난 달려 내려가서

더 커져버린

눈덩이를 또 굴려


정상에 겨우 올려놓으면

다시 아래로 구르고


난 또 달려 내려가서

더더 커져버린

눈덩이를 또 굴려


정상에 겨우 올려놓으면

또 다시 아래로 구르고


그리고 다시

또 다시...


끊임없이 커져가는 후회의 눈덩이


<후회>



작년 11월쯤에 전 애인과 헤어지고 적었던 일기이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굴렸지만 나는 눈덩이를 굴리고 있었고 그래서 내 눈덩이의 크기는 바위와 다르게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다. 나는 과거로 거슬러 거슬러 후회를, 또 자책을 했고 그것은 또 다른 후회로, 자기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후회도 사그라들 무렵, <프로이트의 의자>를 읽고 있는 와중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돌이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과거를 되씹으며 후회하는 순간 현재를 소비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낭비하면 후회해야 할 과거의 덩어리가 점점 늘어납니다. 크기가 커지고 무거워집니다. 악순환입니다.
머리로는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악순환이 되는 것은 무의식의 힘입니다. 무의식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게 합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을 자존심, 열등감,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자꾸 연결시킵니다. -정도언 저, <프로이트의 의자>, 지와인 출판사, 229쪽



'과거의 덩어리'라고 표현된 구절이 낯익다. 작년 11월의 내 상태잖아! 내가 직접 배우고 느낀 후회의 속성이 전문가가 쓴 정신분석학적인 해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러나 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눈덩이를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은 눈덩이에 파묻혀 나 자신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마음속 후회가 잠잠해졌지만, 책에서는 더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후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현재는 분열되고 조각조각나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휴가에 대한 공상으로, 휴가지에서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웁니다. '현실감'이 점점 상실되고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 것은 일단 현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잡다한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조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해서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합니다. 마음에서 태어나서 곧 사라져 버리는 생각, 느낌, 이미지 그리고 몸의 감각에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228쪽


아빠가 내게 알려준 명상법과도 똑 닮아있다. 처음에 아빠가 현재에 집중하는 명상법을 알려줬을 때엔 '말이 쉽지.'라며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내 의식이 현재에 머물러있던 적은 없었다. 늘 잠시 후 있을 일을 걱정하거나 아 그러지 말 걸 하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아빠의 말을 따라 벌어질 일과 벌어진 일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지금을 느끼니 소란하던 잡생각들이 조금씩 누그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후회의 눈덩이를 끊임없이 올리고 내리고 있는 이들이라면 당장 내가 내 쉬는 숨, 혹은 내 눈앞의 햇살, 살결에 닿는 공기의 온도와 같은 감각들에 집중해보자. 단 2,30분만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나면, 후회와 걱정으로 과열되어있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 다시 시작할 힘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계속 현재를 느끼는 연습을 하다 보면 마침내 물처럼 녹아있는 후회의 눈덩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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