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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유 Feb 07. 2023

어쩌다 거짓말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을 끄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서둘러 첫째 등원 준비와 배고파 보채는 둘째를 힙 시트에 앉힌 후 한 손으로 젖병을 물리고 한 손으론 오전에 먹일 이유식을 타지 않게 저었다. 아침부터 애 안고 불 앞에 서 있으려니 힘들고 열이 올랐다.


‘세 달 후면 복직도 해야 하는데 다닐 수 있으려나. 걱정이네 진짜.’  


30대 중반까지 비혼을 꿈꿨던 터라 결혼이 늦어졌다. 뒤늦게 사랑하는 인연을 만나, 본능에 충실하다 보니 두 명이 어느새 네 명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됐네. 또 늦겠다.’

“쭌아, 밥을 하루 종일 먹니. 그만 먹고 씻자. 얼른 이리 와!”

“오빠 좀 씻기고 올게. 잠깐만 놀고 있어.”


유나를 거실에 내려놓고 쭌을 식탁 의자에서 번쩍 들어 욕실로 데려갔다.

쪼꼬가 기다렸다는 듯 꼬리 흔들며 뛰어와서는 유나 입에 묻은 분유를 날름날름 핥았다.

“야아!” 깜짝 놀란 쪼꼬가 도망가고 유나가 해맑게 웃었다. 등원시간 20분이 남아 있었다.


노산에 첫 아이인 쭌의 생활 규칙, 옷차림, 학습, 준비물 등 이것저것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유치원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등원 시간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이 유치원 적응에 큰 도움을 주고 다른 아이들 학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등원시간을 철저히 지켜달라는 원장님의 부탁  말씀이 있었다.


쭌에게 단정히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긴 후 유나를 아기 띠에 둘러맸다. 11분이 남아 있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 가방. 바쁠 때 꼭 이러지.’


유치원 가방을 깜박해서 급하게 거실로 뛰어 들어가 가방을 집었다. 아기띠 무게 때문에 앞으로 꼬꾸라질 뻔하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오메 내 시끼 괜찮아. 놀랬지?”


손목이 아픈데 주머니가 없다. 휴대폰을 어디에 둘지 잠시 생각하다 아이 들여보낼 때 꺼낼 생각으로 유치원 가방 안에 넣고 서둘러 뛰었다. 아마 한국 엄마들은 아기 띠 매고 달리는 경기 시합이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세계대회에서 은메달 하나쯤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분 남겨놓고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안드로메다로 가출했던 멘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머 언니, 오랜만이에요.” 돌아보니 진서 엄마다.

“어, 잘 지냈어요? 진짜 반갑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내가 커피 산다고 했다.


“진서 엄마, 케이크도 먹을래? 아침부터 뛰었더니 당이 무지 땅긴다.”

계산하려고 카드가 든 휴대폰을 찾는 순간.


“오. 마. 이. 갓김치! 어떡해. 어떡해.”


얘기를 들은 진서 엄마가 박장대소하며 선뜻 계산해 주었다. 마시는 내내 미안했다.


“다음에 내가 맛있는 밥 살게. 잘 마셨어요.”




집으로 돌아와 유나를 내려놓고 넉다운 상태로 잠시 누우려는데 눈에 포착된 내 휴대폰.


‘어, 이상하다 가방에 넣었는데 왜 여기 있지. 아닌가?’

분명히 넣은 거 같은데. 내가 뭘 넣은 거지? 아, 아닌가?’  


결혼 전에는 완벽주의자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기억력도 좋고 꼼꼼했었는데 늦은 나이 두 번의 제왕절개 마취 영향인지 돌아서면 깜박깜박 이건 거의 치매 수준이다. 도대체 뭘 넣은 건지 그렇게 한동안 궁금해서 미칠 거 같다가 또 금방 까먹고는 집안일에 열중했다.  


시간이 흘러 쭌이 유치원에서 돌아왔고 궁금증을 가득 안은 채 가방 깊숙이 손을 넣었다.


‘아, 뭔가 만져진다. 휴대폰처럼 길고 납작한 물체. 과연 이건 뭐지?' 서둘러 꺼내고 보니

“옴마야.”


그것은 바로 우리 집 TV 리모컨이었다.


아마 휴대폰 옆에 있어서 급한 맘에 서두르다 색깔도 크기도 비슷한 리모컨을 가방 안에 넣었나 보다. 유치원 가방 안에서 TV 리모컨을 발견한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한심하게 생각하진 않으셨을까?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을 재웠다.

그리고 유치원 수첩에 메모를 남겼다.


[선생님, 가방에 TV 리모컨이 들어 있어서 놀라셨죠. 오늘 아침 쭌이 동생이 오빠

가방을 만지작거리더니 어느새 넣었나 봐요. 다음부터 확인 잘해서 보내겠습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쭌과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스레 짠하고 미안해지는 밤이었다.  

까먹기 전에 알람을 30분 일찍 맞췄다.


긴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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