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도 언급했듯이 늦게 결혼한 터라 첫째 아들을 40살, 둘째 딸을 43살에 낳았다.
작년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유치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여자아이 네 명이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매일 아침 엄마들과 함께 아이들을 등교시켰다.
유치원 때는 등, 하원 차량을 이용했기 때문에 엄마들과 안면은 있어도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아이 등하교시키면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친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D 엄마가 친정엄마 얘기를 꺼내며 며칠 전 코로나 걸려서 고생하셨다고 했다. S 엄마가 친정엄마 연세를 물어봤다. 56세라는 답에 내가 감탄하며 “우와 엄청 젊으시네요.” 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 나이 얘기로 넘어왔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D 엄마가 36살이라고 말했다. H 엄마도 36살, S 엄마는 41살이라고 했다. 남은 사람은 나,
D 엄마가 궁금한 눈초리로 내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모두 내 입만 쳐다봤다.
“전 나이 많아요.” 얼버무렸다.
“몇 살인데요? 사십은 넘었어요?” 택도 없는 말에 헛웃음만 나왔다.
고백하자면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이 참 기분 좋게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 나이를 알게 됐을 때 당혹스러워하는 상대의 표정과 리액션에 어색해지는 분위기가 싫었다.
계속 다른 얘기로 돌리며 집 앞에 다다랐다.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집요한 D 엄마.
“끝까지 말씀 안 해주시네요. 몇 살이신데요? 설마 오십은 안 넘으셨을 거 아녜요”
“올해 딱 오십됐어요.”
“아......”
30초간 정적. 다들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음. ‘그대로 멈춰라’가 됐다.
그들의 표정을 읽으며 친정엄마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나는 어려운 사람이겠구나. 거리감이 생겨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첫째가 1학년일 때도 1~6학년 전교생 엄마들 중 왕언니 TOP10에 들었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학교 행사며 활동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체력적으로 딸렸지만 티 내지 않았다. 아이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극적으로 교류한 덕에 많은 엄마들과 언니 동생 하며 친하게 되었다.
네 명의 여자아이들은 계속 어울리고 싶어 했다. 학교가 끝나면 놀이터. 함께 다니는 피아노 수업이 끝나도 놀이터였다. 사이버대 문창과에 다니고 있는지라 피곤함에 절었는데도 매일 그렇게 놀이터로 키즈카페로 생일잔치로 불려 나가다 보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사라지질 않았다. 딸의 교우 관계를 위해 이번에도 늙은 애미는 힘을 내야 했다. 연신 해대는 하품에 입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예상과 다르게 엄마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여름, 딸이 리듬체조를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유연성이 남다르고 봉만 있으면 매달리고 돌기부터 하는 딸을 보는 사람마다 체조 같은 걸 시켜보라고 했다. 몸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일 거라고만 생각한 늙은 엄마는 알아보는 일조차 조금 귀찮고 버거웠다. 아이가 1학년이 되고 나니 혹여 재능이 있는데 엄마가 무심해 놓치고 지나간다면? 때가 지나면 체조는 시키고 싶어도 시킬 수 없지 않은가.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테스트받고 결정하기로 했다.
유연성은 최고. 체조하기 좋은 조건의 몸을 가졌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 정도면 한두 달 후 꿈나무 선수 반 진급도 가능하다고 했다.
체조 학원은 왕복 1시간 30분, 막히면 2시간이 걸린다. 수업 시간 3시간. 고되지만 아이의 꿈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5시간씩 꼬박 투자하고 있다.
체조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부모 대기실이 답답하고 불편해 늘 차에서 대기하다 보니 집에 가는 길엔 지쳐 있었다. 운전하면서 “피곤해. 힘들어.” 혼잣말로 중얼대는데 딸아이가 물었다.
“내가 몇 살 되면 엄마 할머니야?”
“지금도 할머니인데 갑자기 왜?”
내 대답을 듣는 순간 딸이 소리 내 울었다. 당황해 룸미러를 보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엄마 할머니 되면 죽잖아. 엄마 힘드니까 금방 죽는 거 아니야?”
어이없어 웃음이 나는데도 가슴이 찡했다.
“엄마 죽을까 봐 걱정됐어? 엄마 할머니 아니야. 그리고 우리 딸이 할머니 될 때까지 살 거야.”
“진짜지? 엄마 안 죽을 거지? 난 엄마랑 백 살까지 살 거야.”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불안해하며 걱정하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엄만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었는데 딸은 얼마나 더 불안할까... 아이 앞에서 자꾸 힘든 모습 보이지 말아야지.
나는 초등 학부모, 늙은 엄마다.
비록 지금은 왕언니 TOP 5에 올라섰지만 아이가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는 버팀목이 되려면 더욱 건강하자고, 내일은 더 힘내리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