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했다.
지독하게 괴롭히던 어깨통증이 나아지기는커녕 팔을 들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서울에 있는 전문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근육 두 곳이 파열되어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동네 병원에서 석회염이라 했고 1년 가까이 근육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아왔다. 그런데 근육 파열이라니. 잠을 못 잘 정도로 욱신거리던 통증의 이유를 알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수술 후 삼사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는 말에 애들 개학 일주일 앞두고 급하게 입원했다. 집에는 아프신 엄마와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기에 입원 수속을 마치자마자 남편을 돌려보냈다.
병원에 온다는 가족들에게 괜찮다고 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이때를 핑계 삼아 조용히 쉬고 싶었다. 4인실 병실에 보호자 없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간호사가 건네주는 환자복을 받았다. 오른팔 전체가 반으로 갈라져 중간중간 끈으로 묶어져 있었다. 힘들게 팔을 넣고 보니 어깨부터 팔목까지 속살이 훤히 보였다. 괜스레 신경 쓰여 팔을 빼고 끈을 최대한 졸라맨 뒤 다시 입었다. 옷 하나 갈아입는데도 식은땀이 났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옷도 입혀주고 끈도 묶어주었을 텐데 조금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정맥 주사를 잡는 간호사가 내 혈관 몇 개를 터트렸다. 수술 바늘이 굵은 데다 혈관이 약한 탓에 간호사가 몇 번 바뀐 뒤에야 왼팔 손등에 놓는 데 성공했다.
혈관이 터질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났다. 수십 번을 찌르고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던 메말랐던 멍투성이 아빠의 팔.
잠깐도 이렇게 아픈데 아빠는 어떻게 견뎠을까.
마음이 약해졌는지 자꾸 눈물이 났다. 혼자라서 다행이었다.
다음날 전신마취하고 어깨 수술을 받았다.
마취가 풀리자, 고통이 밀려왔다. 수술한 오른팔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보호대가 채워져 있고 왼팔엔 수액이 달려있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난감했다. 일어나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밥 먹는 것. 어느 것 하나 안 힘든 것이 없었다.
빠른 회복을 위해 교수가 1주일 더 입원하기를 권유했지만 마음 편하게 누워있을 상황이 못 되는 나는 6일 만에 퇴원했다.
못 본 사이 엄마가 부쩍 야위어 있었다.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집안에 자꾸 아픈 사람이 생기는 것과 수술받고 홀로 병원에 있는 내 걱정에 몸살이 온 모양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딸처럼 엄마가 나를 반겼다.
보호대를 차고 조심조심 일상을 찾아갔다. 애들 학교 보내고 집안일하고 햇살 좋은 날엔 엄마와 산책했다. 이 길은 벚꽃이 참 예쁜데 그때도 엄마랑 같이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월 18일. 엄마는 담낭 절제술을 받고 지긋지긋했던 배액관 주머니와 안녕했다. 퇴원하면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시라 했지만 더 이상 신세 지기 미안했는지 오랜 기간 비워뒀던 집이 걱정된다며 엄마 집으로 가셨다.
엄마가 쓰던 방 주인인 딸이 이불을 갈았는데도 침대에서 할머니 냄새가 난다며 울먹였다.
엄마의 빈자리는 꽤 오래도록 쓸쓸했다.
최근 몇 달은 내게 참 가혹한 시간이었다.
모든 게 그대로여서 시리고, 더 아팠다.
변함없이 봄이 왔다.
시련 뒤에 좋은 날이 오듯, 차디찬 겨울을 견뎠으니 곧 눈부신 날이 올 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