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 - 복면가왕>,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듀엣 가요제> 이후 취향저격 프로그램 리스트가 하나 더 늘었다. <보컬전쟁: 신의 목소리>(이하 신의 목소리).
아직 방송 자체가 채 10회를 넘지 않았고, 사실 첫 방송부터 제 시간대를 지켜 본 것도 아니다. 대략 3~4주 정도? 뒤늦게 IPTV로 지난 방송분을 챙겨 보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기획의도라든가 프로그램 포맷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자잘한 부분을 완벽히 채우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을 더 미뤄두고 싶지는 않았다. 워낙에 생각이 많은 타입이다 보니, 이야기를 미루다 보면 또 어떤 생각들이 복잡하게 꼬여버릴지 예측할 수도 없고.
오늘 밤 방송될 분량을 기다리면서 몇 가지 생각을 펼쳐본다. 그 과정에서 건져낸 네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신의 목소리>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콘텐츠Contents 라는 단어는 추상적이다.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무척 많다. 카테고리를 매겨서 나눈다 해도 너무 다양해서, '콘텐츠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다만, 나름의 공통점은 뽑아볼 수 있다. 내 기준에서 소비하는 모든 콘텐츠에는 내러티브Narrative, 즉 나름의 인과관계가 들어있다. 흔히 '기-승-전-결 起-承-轉-結'이라 말하곤 하는 문장 구성의 4단계로 콘텐츠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토리 콘텐츠를 즐겨보는 타입이어서인지, 나는 방송 프로그램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드라마나 시트콤은 물론, 다큐멘터리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기-승-전-결 구도를 찾으려 하는 편. 예를 들어, 주 1회씩 편성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매 회차별로 각각의 기-승-전-결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주 1회 편성'이라는 관념에서 봤을 때, <신의 목소리>는 변칙Irregular이다. 한 회 분량을 2주로 나눠서 방송하기 때문에 구성 환경 자체가 다르다는 거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이미 몇몇 프로그램에서 '주 1회 편성이되, 한 회차가 2주에 걸쳐 진행되는'(편의상 이하 '2주 1회 프로그램'이라 칭함) 포맷을 선보이고 있으니까. MBC <복면가왕>이 그 대표적인 예다.
1주일에 한 편씩 편성되는 관례를 벗어났다는 건 일종의 패러다임Paradigm 전환이다. 이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보다 풍성하게 담아낼 가능성을 보장한다. 한 번의 방송에 할당된 분량을 60분이라 했을 때, 기존에는 그 60분 안에 기-승-전-결을 모두 담아내야 했다. 자연스레 주된 인과관계와 거리가 있는 내용들은 편집이라는 이름 아래 전파를 타지 못하게 마련이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토막 영상이나 무편집본 등으로 만나볼 수는 있지만.)
이에 비하면 2주 1회 프로그램은 좀 더 여유롭다. 총 120분으로 한 회차가 구성되기 때문에, 주 흐름과 무관한 내용도 재미만 있으면 분량을 차지할 수 있다. 프로그램 분량의 경계를 좀 더 넉넉하게 함으로써, 프로듀서의 성향에 따른 편집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는 뜻. 이런 식의 변화는, 지켜보는 입장에서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다만, 이러한 시도를 무조건 좋게만 볼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볼 때 그 안에서 그려지는 내러티브 곡선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매달리는 편이다. 이 내러티브라는 녀석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놔둘 때 가장 강력한 법. 인위적으로 허리를 잘라놓으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끊겨버린 흐름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고, 때로는 호불호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한 예로 내 경우에는, <복면가왕>을 볼 때 1라운드가 방송되는 주간에는 딴짓을 하며 볼 때가 많다. 반대로 가왕전이 있는 주간에는 완전히 몰입해서 본다. 한 회 분량 중 전반전(예선)은 대충 보고, 후반전(본선)은 집중해서 보는 셈.
모르긴 몰라도, 나와 같은 패턴을 갖고 있는 시청자는 더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습관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어쨌거나 이는, 매주 균일한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2주 1회 프로그램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리스크. 방송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진이 그걸 모를 리는 없다.
게다가 <신의 목소리>는 여기에 덧붙여 리스크 하나가 더해져 있다. 굳이 이름 짓자면, '분량에 따른 유동적 구성' 정도가 되겠다.
비교를 위해 <복면가왕>을 살펴보면, 첫 번째 주에는 1라운드 4개 조의 듀엣곡과 탈락자의 솔로곡까지 총 8곡의 무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두 번째 주에는 2라운드, 3라운드와 가왕전까지, 총 7곡의 무대를 보여준다. 이는 <복면가왕>이 정규 편성 이후 변함 없이 유지해온 포맷이다. 그러니 나와 같은 시청 패턴도 나올 수 있다.
이에 비해 <신의 목소리>는 어떤가. 첫 번째 주에 '새로운 신의 목소리 소개'와 '도전자 맞이'를 보여주고, 두 번째 주에 도전자 지목을 받은 가수들과의 상상불가 대결을 보여주는 방식. 통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게 가장 그럴 듯한 구성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방송을 보면,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방송된 회차들을 살펴보면, 어떤 주에는 도전자 맞이 + 상상불가 무대 1회까지를 보여줬고, 또 어떤 주에는 상상불가 무대를 2회까지 보여준 적도 있다.
이는 프로그램을 이루는 디테일 안에 몇 가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도전자가 200명 중 100표를 얻어 1라운드에 등장할 수 있는가.
둘째, 등장한 도전자가 신의 목소리 중 3명 이상에게 표를 받아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가.
셋째, 신의 목소리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다음 또 다른 대결을 기약할 수 있는가.
이 모든 단계에서, 정해진 숫자 같은 건 없다. 모든 도전자가 2라운드에 진출함으로써 보다 많은 분량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 보자면 모든 도전자가 신의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고배를 마실 수도 있다. 아직까지 그런 적은 못봤지만, 아예 100표를 받지 못해 무대 뒤에서만 노래를 부른 뒤 내려가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2라운드까지 진출한 도전자 1인은 어느 정도 고정된 분량을 담당한다. 하지만 상상불가 대결의 승패 여부 또한 정해진 숫자가 없다. 모든 도전자가 신의 목소리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도 있고, 반대로 패배할 수도 있다. 승리한 도전자에게는 또 한 번의 도전 기회가 자동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그 다음 회차의 도전자 수에도 변화가 생긴다. (글로 설명하려니 더럽게 어렵다…)
아무튼 요점은, 프로그램 전체에 걸쳐 분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것. 물론 녹화나 편집 등의 작위적 방법으로 분량을 맞출 수도 있다. 하지만, 리얼리티 쇼를 지향하는 트렌드가 한창 무르익은 요즘,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지켜야 할 선은 생각보다 빠듯해 보인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할수록 분량이 들쭉날쭉하기 쉬운 태생적 구조. 이것은 과연 처음부터 의도된 프로그램의 방향성일까? 아니면 일단 방송을 진행하면서 적당한 포맷을 찾아 맞춰가자는 계획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본방 사수를 좀 더 이어가다 보면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 당장 궁금해 미칠 것 같다는 게 좀 문제긴 하지만.
말이 안 된다. 당연하다. 한 쪽은 노래를 업業으로 삼는 프로 가수, 그것도 '신의 목소리'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만큼 인지도와 실력을 겸비한 사람들이다. 수많은 음원 작업과 무대 경험 등을 통해 축적된 노련함은, 객관적 수치로는 가늠할 수 없는 프로들의 경쟁력이다.
이에 비해 다른 한 쪽은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고 하지만 결국 일반인. 경험과 숙련도 측면에서 저울의 무게추가 일치할 리 없다. 만약 이런 대결 구도를 보고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아마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진지하게 분석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확률로 따지자면 불가능에 수렴하는 미션.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밸런싱Balancing이 가해졌다. 네티즌 선정으로 제시되는 상상불가 곡 중 2라운드에 진출한 도전자가 골라주는 한 곡. 그리고 고작 2~3시간에 불과한 편곡 및 무대 준비시간.
'상상불가'라는 형용사에 걸맞게, 선정된 곡은 각각의 신의 목소리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익숙한 스타일을 벗어날 것을 강요한다. 또한, 재해석과 편곡, 실제 무대 구성까지 촉박하기 짝이 없는 시간 안에 끝내라는, 제법 고난도의 미션을 주문한다.
반대로 도전자에게는 좀 더 여유로운 환경이 주어진다. 자신이 지목한 가수의 곡 중 하나를 선택해, 같은 시간 동안 무대를 준비한다. 준비 시간이 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도전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에 지원할 때부터 어느 정도 미리 계획할 여유가 있다. 즉, 도전자 측의 준비 시간은 훨씬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 도전자는 신의 목소리보다 먼저 공연을 해야 한다는 페널티를 받는다. (먼저 공연하는 쪽이 불리하다는 건, 경연 방식을 채택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입증된 바 있다. MC 성시경 또한 5월 11일 방송분에서 '도전자의 노래가 잊혀지기 전에 빨리 무대를 진행해 달라'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정도 핸디캡이면 어느 정도 공평한 대결이 가능할까? 신기하게도 가능했다. 도전자들이 승리를 거두는 사례가 심심치 않은 정도로 나오면서, <신의 목소리>는 '프로 대 아마추어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이 충분한 긴장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임을 증명해 보였다.
여기서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늘어지게 써온 건,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예능에 어울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설령 프로 가수가 고배를 마시더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그들이 짊어진 핸디캡이 어느 정도인지는 출연자들도, 방청객들도, 시청자들도 안다. 도전자가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 해도, 그것이 패배한 가수의 생계나 명예를 위협하지는 않는다는 것.
비교적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 예로, JTBC <히든싱어>를 생각해보자. 네 번째 시즌까지 방송되는 동안, 모창 능력자들 사이에서 중도 탈락한 가수들은 꽤 많다. 그들에게 "일반인에게 지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가수냐"라고 비난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히든싱어>의 프로그램 구성상, 출연 가수들이 짊어지는 핸디캡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출연 가수가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아쉽다" 정도의 감상을 표할 뿐, 가수 자격을 운운하거나 하는 극단적 의견이 여론을 달구지는 않는다.
<신의 목소리>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야할 것이다. 프로 vs 일반인의 대결 구도를 갖추고 있다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형식일 뿐 핵심은 아니다. 음악이라는 영역을 누리고 즐기는 데 특별한 자격 요건 같은 건 없음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참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신의 목소리로 출연한 가수들은 상당한 이득을 얻게 되지 않나 싶다. 기존까지 선보였던 본인의 스타일 외에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무대에서 선보일 수 있는 기회. 평소에는 개인 콘서트라든가 연말 특별무대 정도에서나 선보일 수 있을 법한, 그런 기회를 비교적 덜 부담스러운 조건으로 더 자주 얻게 되는 셈이니까.
<복면가왕>을 거쳐간 수많은 가수들이 보여준 것처럼,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공식적 기회. 이는 음악을 업으로 삼는 프로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 상상불가 곡을 재해석하는 시간 동안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좀 손해일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인지라……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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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목소리의 궁극적 콘텐츠는 이미 공개됐다시피 5승을 거두는 도전자가 나올 수 있는가다. 예상컨대 이는 과거 그 어떤 미션형 프로그램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고난도의 미션이 될 것이다. <도전 골든벨>이나 <우리말 겨루기>, 아니면 <1대 100>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하는 건 프로 가수들에게도 녹록치 않은 일이다. 꾸준히 연습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본래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은 어느 정도 범위가 정해져 있게 마련이니까.
하물며 일반인 도전자가,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매번 프로 가수들과 경연을 벌여 5번의 연승을 거둔다? 이건 절대적으로 높은 장벽이 될 공산이 크다. 음…… 만약 한 번 이겼던 대결상대를 다시 지목할 수 있다면, 좀 가능성이 높아질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쉽지 않은 미션인 건 매한가지겠지만.
이건 프로그램 제작진이 기획해둔 규정을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 좀 더 지켜봐야할 듯하다. 아직까지 2연승의 벽을 넘어선 도전자는 나오지 않았으니, 상황에 따라 기준이 완화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겠다. <신의 목소리>, 아무튼 여러 모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내 취향저격 리스트에 올릴지를 고려할 프로그램은 <판타스틱 듀오>만 남았다. 그 사이 새로운 음악 예능이 또 시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이건 <복면가왕>이랑 시간대가 겹치는 프로그램이라 고민이 좀 필요할 듯하다. 그냥 맘 편히 IPTV에 의존해야 하려나……
P.S.
5월 26일자 본 방송에서, 2승에 도전하는 방효준 씨의 무대를 감상한 뒤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프로 가수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핸디캡을 짊어진다'는 논리로 접근한 바 있는데요. 다시 글을 읽다보니 '프로가 당연히 우세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 들어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는 결코 도전자들의 열정과 감성, 꾸준히 갈고 닦은 노력을 간과하거나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미 발행한 글을 모른 척 수정하는 것보다, 이처럼 첨삭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이 내용을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