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부터 <동네 변호사 조들호>까지, '사이다'는 계속되리
2002년 개봉했던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를 좋아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작품에 등장하는 강철중(설경구 분)이라는 캐릭터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성실함? 준법정신? 경찰 뱃지 없으면 딱 동네 건달이 '형님'할 것 같은 비주얼. "요즘 애들은 한 성깔 하거든요?"라는 당찬 반항에 "그 애들이 커서 된 게 나다"라고 받아치며 후려치기를 시전하던 껄렁한 배짱과 입담. 모범적인 경찰과 멀어도 한참 멀었던 그를, 난 왜 그리도 마음에 들어 했던 걸까.
그건 지금 생각해도 이성적으로는 답하기 어렵다. 그냥 마음에 드니까 마음에 든다고 했을 뿐.
아니,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니 적당히 끼워맞춰보면 제법 이성적인 답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굳이 제목을 정하자면, '정의'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이랄까.
주위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결코 타의 모범이 될만한 인간은 아니다. 급할 때는 종종 무단횡단도 하고, 가끔 길바닥에 침도 뱉는다. 걸어가다가 쓰레기통을 찾지 못하면 들고 있던 쓰레기를 구석진 곳에 슬쩍 놔두기도 하고, 공공장소의 무법자(?)들을 바라보며 인상만 찡그릴 뿐 선뜻 나서지도 않는다. 욕&비속어의 일상화 정도는 당연한 일이고…… 당장 적으려니 이 정도지만, 흑역사 쪽을 좀 더 들춰보면 분명 그보다 더한 짓도 많이 했을 것이다.
에이, 그 정도야 누구나 살면서 할 수 있는 거 아냐?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런 잘못 정도는 사소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잘못인 걸 알면서도 매 순간 내가 처해 있었던 그 상황을 더 우선으로 두곤 한달까. 혹은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적당히 포장하거나 '에이, 이 정도 쯤은 괜찮잖아?'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그런 식의 판단으로 넘어가거나.
'이 정도도 안 하는 사람은 절대 절대 없다'거나 '이 정도도 안 하고 사는 건 인간이라 할 수 없다'는 식으로는 말 못하겠다. 누군가 진짜 그 모든 걸 칼 같이 지키며 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쨌거나, 여러 각도로 비춰봤을 때 나는 모범적이라 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걸 자백하면서도 또, '이 정도면 평범한 수준 아냐?'라고 위안을 삼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 진리는 원래 쉬울 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배운대로만 살면, 정말 올바른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그게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보다는 적당히 경계를 긋고 융통성 있게 정의를 추구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빠른 길일 것이다.
물론 이는 앞서 말했듯, 개인적인 정의관正義觀이다. 난 결코 모범적인 인간이 아니기에 이런 식의 정의관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이유, 그러고 보면 그것도 내가 별로 모범적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작품 초반 그는 경찰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들을 종종 하고 다닌다. 누군가는 "저것도 경찰이라고…"라며 혀를 찼을 것이고, 뒤돌아서 욕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다. 강철중 스스로도 분명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기준으로',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가지고 있다. 그 선을 넘은 나쁜 짓을 하는 진짜 못된 놈에게는 여지 없이 분노의 쌍욕과 주먹질을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두려움 때문에 쉬이 나서기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에도,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드는 무모하리만치의 근성을 가진 사람. 강철중은 그런 캐릭터다. (누군가는 그런 걸 '용기勇氣'라 부르더라.)
즉, "나도 그리 착한 놈은 아니지만 넌 진짜 진짜 나쁜 놈이다."라는 상대적 논리. 강철중이 보여준 그 우격다짐식의 '도덕 마지노선'에 공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 바르게 살지도 않았고, 그리 착하고 성실한 것도 아니라고 자백(?)하고 다닐지언정, 최소한 "사람이 사람 죽이는 데 이유가 있냐?" 같은 미친 소리에 동의하지는 않는 것. 그 모습이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도덕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느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물귀신 스타일 해석이다.
지금 우리는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을 이미 갖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렇다'고 선뜻 답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건 정의 구현의 시스템에 허점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뭔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외의 또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고.
<공공의 적> 류의 작품이 '사이다'처럼 다가왔던 건, 우리네 사회의 정의 구현 시스템에 존재하는 아쉬움을 콕 집어 부각시켜줬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아쉬움을 한 번쯤 시원스럽게 긁어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도 현실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캐릭터를 앞세웠으니 한결 더 시원하다.
가려운 곳은 대개 한 번 긁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정의사회구현에 관한 이른바 '사이다' 코드가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재생산되면서도 꽤 잘 먹혀드는 이유다. 특히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뒤숭숭할수록 이런 코드는 더욱 빛을 발한다. 현실에서 만나보기는 어려운 스토리일지언정, 속이 뻥 뚫리는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기 위해서.
2015년 영화 <베테랑>이 흥행을 거뒀던 건, 물론 배우들의 명품 연기 덕도 있었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의 공도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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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시청률은 썩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방영했던 드라마 <복면검사>도 주제 면에서는 비슷한 맥락을 그리고 있었다. 2015년,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방영한 <미세스 캅> 시리즈도 마찬가지.
형사 강철중으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현재. 나는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를 통해 또 한 번 '정의사회구현 맛 사이다'를 한껏 들이키는 중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조들호는 강철중과 다르다. 특히 도덕성 면에서는 정말 딴판이다. 하지만 소탈함을 넘어 껄렁해보이는 겉모습과 물불 가리지 않는 근성만큼은 두 사람을 겹쳐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한 농밀함을 지녔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알듯, 이 드라마는 본래 동명의 네이버 웹툰이 원작이다. 딱딱하게 느껴지기 쉬운 법 조항들을 실제 있을 법한 사례들로 엮어서 풀어주는 해츨링 작가의 스토리 전개 솜씨가 일품이었다. 원작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작품 본래의 맛이 파괴됐던 경험을 과거 몇몇 작품에서 봐왔다. 때문에 <동네 변호사 조들호> 역시 방영 예고를 볼 때부터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조들호는 박신양이라는 배우를 만나 3D 세상으로 훌륭하게 튀어나왔다. 싱크로율은…… 90% 정도? 원작의 캐릭터성이나 설정은 최소한으로 깔고, 원작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를 풀어낸다. 원작 파괴를 걱정할 이유 따위는 이미 사라졌으니 마음 편히 매주 사이다만 들이키는 중이다.
돈을 무기로 삼아 사람 목숨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인물을 적으로 규정하고 거침없이 발톱을 드러내는 조들호. 말로는 '개인적 복수'임을 외치곤 하지만, 이미 그 행동에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사이다가 촉촉하게 적셔져 있다. 탄산 함유량만큼은 원작보다 높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
현재까지의 스토리라인은 마음에 쏙 든다. 정관계를 주름잡는 대기업 회장. 그 거대한 적을 상대로 이어나가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외롭고 무모한 싸움. 그는 '동네 변호사'라는 포지션을 통로로 삼아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법한 사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비춰준다. 그 모든 에피소드는 모두 단 하나의 대상으로 귀결된다.
대화그룹? 정 회장, 또 당신이야?
소시민들의 억울한 스토리가 죄다 단 하나의 대기업과 엮여 있다는 건 사실 다소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이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의不義를 단 두 사람의 관계 안에 꽉꽉 눌러 담아놓은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세상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 '그들의 언행은 정의로운가? 정의롭지 못한가?'라는 초등학생도 답할 수 있을 법한 질문에 대해, 현실적인 모양새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따져주는 이야기다. 고농축의 탄산을 함유한 스토리가 될 수밖에.
냉장고 속 사이다 병을 꺼내 한 컵 가득 따른다. 원 샷. 눈물 찔끔할 정도의 목넘김과 함께 시원함과 달콤함이 한가득 느껴진다. 저런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하는 이들이 꾸준히 있는 한, 내가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