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익숙해질 틈 없었던, 폭군의 음악 공포정치
※ 이 글은 2016년 4월 24일을 기준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2016년 6월 5일, 총 연승기록 9회. 151일 간에 걸친 그의 노력에 아낌 없는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또 이겼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1차전에 등장한 여덟 명의 복면가수를 보면서, 노래를 듣기도 전에 묘한 기류가 먼저 느껴질 때.
저 가면, 어쩐지 가왕 느낌이 나는데?
물론, 대충 막 던져보는 거라서 별로 적중률이 높진 않다. 하지만 가끔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한 번씩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이하 음악대장)이 그랬다. 오랜만에 잘 찍은(?) 진국 중의 진국.
음악대장은 무려 7대, 총 14주에 걸쳐 가왕 타이틀을 지켜냈다. 게다가 오늘 승리했으니 아직도 끝난 게 아니다. 오직 목소리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복면가왕>의 모토이니, 일단 그만큼 노래를 잘했다는 뜻.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무릇 사람이란, 그리고 대중이란, 반복되는 무언가에 점차 적응해가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콘텐츠가 지속적인 반향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전문 비평가가 오직 그 콘텐츠만을 놓고 이야기 한다면, 대중은 과거의 경험을 배제하지 않은 채 콘텐츠를 소비하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 과정에서 어떤 익숙한 패턴이 발견되면, 대중은 그걸 금방 느낀다. 무뎌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콘텐츠라도, 무뎌짐이 식상함, 그리고 지루함으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코스모스' 거미의 4연속 가왕, '캣츠걸' 차지연의 5연속 가왕. 단 한 사람의 우승자와 반복되는 경쟁 무대.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채택한 포맷 안에서, 한 사람의 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경솔했던 가설은 지금 무척이나 위태롭다. 그리고 음악대장이라는 사람에 의해, 매 2주마다 계속 구석으로 내몰리는 중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뚜렷한 '카리스마'. '정해진 패턴? 내게 그런 건 없다'고 외치는 듯한 패기.
그 특유의 카리스마는 어디서 나오는가. 아마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해가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처음 그를 가왕 자리로 이끌었던 곡, <Lazenka, Save Us>부터 신선한 선곡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지만, 이 곡이 원래 어디서 나온 것인가를 생각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그리 높은 편이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의외의 선곡은 음악대장의 카리스마를 만나 한 폭의 절경을 만들었다.
▶ 복면가왕 공식 TV캐스트 : <Lazenka, Save Us> 영상 보기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가왕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선곡했던 <걱정 말아요 그대>, 그 다음 선택한 <Fantastic Baby>. 모두 하나하나 기억에 담아둘 만한 무대였다.
특히 <Fantastic Baby> 무대에서 빛났던 음악대장의 카리스마는 80표라는 대기록을 냈다. 솔직히, 그 정도 차이가 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어쨌거나 가왕전까지 올라온 가수와의 대결인데, 그렇게 압도적인 차이를 보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다. 판정단의 취향에 따른 근소한 차이 정도일 거라 생각했을 뿐. 이쯤 되면 방송 당일 자막에 나왔던 대로 '공포정치'급이다.
두 주가 지난 뒤 또 한 번의 가왕전, 그는 다시 스타일을 바꿨다. <돈 크라이 Don't Cry>. 판정단으로 출연한 강균성의 말처럼, 대중적인 인지도는 조금 덜했을지 몰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곡이다. 수많은 남자들의 성대 파괴(?)에 기여한 곡이기도 하다. 첫 등장에서 보여줬던 <Lazenka, Save Us> 만큼이나 음악대장 본연의 카리스마를 폭발시켰던 정공법. 강력했고, 제대로 먹혔다.
음악대장은 27대 가왕결정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로, 28대 가왕결정전에서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로, 스스로의 음악 스펙트럼에 또 하나의 색깔을 더했다. 매번 환호와 감탄을 아끼지 않게 하는 솜씨. 그를 지켜보는 모두를 향해 "아직 더 남았다"고 말하듯, 철저히 사람의 마음을 주무르는 솜씨. 매 순간순간이 진정 '신의 한 수'다.
음악대장은 틈틈이 가왕 타이틀에 집착하는 듯한 멘트를 던지곤 했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하는 말일 뿐, 내 귀엔 농담처럼 들렸다. 그의 무대들은 결코 가왕이라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대신 그는, 그저 실험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한 사람의 목소리와 스타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음악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주제의 실험.
뒤늦게 밝히지만, 이 글은 <Fantastic Baby> 무대와 더불어 스틸하트의 말젠코 마티예비치가 출연해 화제가 됐던 즈음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대장이 가왕 자리에서 내려오던 순간 올리기 위해 한 토막씩 적어두던 것인데…… 그의 행보가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쯤에서 적당히 매듭을 지으려 한다.
오랫동안 가왕 자리를 지켰던 다른 가수들이 그랬듯, 음악대장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역시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그러니 구태여 이 글에서 그의 정체에 대한 문장을 보태지는 않으려 한다. 어차피 난 음악대장이라는 '가면'에 대해서만 적으려 했던 거니까.
아, 벌써부터 2주 뒤에 펼쳐질 그의 다음 무대가 기대된다. 좌중을 장악하는 또 한 번의 공포정치가 기다려진다. 음악대장이 선택한 곡목을 보는 순간, 흥분이 차오르지 않는 날. 그 날이 되어서야, 나는 이 무조건적인 응원과 호응을 한 풀 접어둘 수 있을 듯하다.
그보다는 아마 그가 가왕 자리에서 내려와 가면을 벗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