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를 보며 느꼈던, 그리고 느끼고 있는 것들
한 달여 전. <뷰티풀 마인드>라는 드라마가 방영 시작을 알렸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제목만 봤을 때, 나는 가장 먼저 동명의 책과 영화를 떠올렸다. 20세기 천재 수학자라 알려진 존 내쉬John Forbes Nash(1928~2015)의 일대기를 다룬 그 작품. 혹시 그걸 드라마로 재해석한 걸까?
아니 가만… 그게 드라마로 재해석할 여지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지만, 아니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이 작품은 재해석의 여지가 없다. 아니, '절대'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 '거의 없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혹여 내가 발견하지 못한 재해석 포인트가 있다 해도 별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도(?) 이 드라마, 존 내쉬와는 무관한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나마 어거지로 공통점을 찾자면, 일정한 '공식'으로 인간을 읽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려나…… 뭐든 시작하면 일단 끝을 봐야 하는 성질머리 덕분에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를 보기 시작했다. 음…… 뭔가 낚인 것 같지만…… 요즘은 시간 많으니까 뭐.
<뷰티풀 마인드>라는 제목은 참 마음에 들었다. 내 얕은 상식 안에 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내 호기심을 불렀고, 그 기억의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는 소재들을 나열했다. 빚어낸 결과물은 흥미로웠다. '공감을 모르는' 주인공, 그를 향해 다가가는 '공감의 기적'.
사이코패스Psycho-Pass. 흔히 반사회적 인격장애ASDP,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고 알려져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영오(장혁 분)의 표현대로, '공감 장애'가 사이코패스의 본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본다. 우리 주위에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살인범. 혹은 잠재적 범죄자. 꼭 그게 아니더라도 대체로 사이코패스에 대한 인식은 극도로 부정적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특징은 주로 '죄책감'과 같은 심리적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프레임으로 이어진다. 사이코패스 = 범죄자 or 잠재적 범죄자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극 중 이영오에게 쏟아지는 주위의 시선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구에도 견줄 수 없이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는 절대적으로 꺼리는 존재. (그래도 곧 쓰러질 환자를 앞에 두고 시계를 보며 초를 세고 있는 건 실력과 상관 없이 또라이 같은 짓이다.)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수식어를 명예롭게 여기는 이른바 '윗사람'들은 '자신들의 병원'에 사이코패스 외과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 한다. 또한, 동료 의사나 직원들은 그가 사이코패스임을 앞세워 출중한 실력을 외면하려 한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은 이영오 본인이 원인을 제공하는 거라서 딱히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극 중 이영오는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어린 시절 수술을 받다가 전두엽에 손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감정 중추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후천적 사이코패스'인 셈. 그의 아버지(가 된) 이건명(허준호 분)은 '내가 책임지고 보통 사람처럼 살게 하겠다'고 했고, 이영오는 인간의 심리에 따라 나타나는 바디 시그널Body Signal 등의 비언어적 신호를 익힌다. 즉, '감정을 머리로 습득한' 셈이다.
이 시한폭탄 같은 미봉책은 애초부터 줄줄 새고 있었다. '머리로 익힌 감정'의 오작동 사례는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매 회 틈틈이 보여주는 이영오의 과거 에피소드에 그 흔적들이 드러난다. 짤막한 기억의 조각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영오는 늘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굴레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6부작 중 10회. 그 동안에도 이영오의 '머리로 배운 감정'은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켜 왔다. 특히 무척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계진성(박소담 분), 현석주(윤현민 분)와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너무 인간적이라 가끔은 고구마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건 함정) 반환점을 찍고 2회 분량이 더 진행된 어제까지의 시점에서, 드디어 이영오는 변화의 물꼬를 텄다.
<뷰티풀 마인드>. 굳이 직역하자면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뜻의 이 드라마는, 사이코패스라는 캐릭터를 장치로 삼아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란 무엇인지를. 더불어 사이코패스의 굴레를 짊어진 채 살아온 한 사람이 보통 사람들의 사이로 스며드는 과정을 그린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기에 자신의 지식을 실행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외과의. 어쩌면 '천재 외과의'라는 타이틀은 외로움이라는 극한의 형벌을 대신해 주어진 달콤한 열매일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열매에 비해 너무 가혹한 형벌이 주어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제 이영오의 앞에는 지난 수십 년의 외로움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걸어갈 수도 있는 갈림길이 놓여있다. 호기심투성이로 다가온 존재, 계진성을 통해 이영오는 감정을 다시 배워간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진짜 감정을.
<뷰티풀 마인드>의 목적지는 결국 기존까지 방영했던 메디컬 드라마와 똑같을지도 모른다. '좋은 의사', '인간적인 의사'. 환자를 살리겠다는 목적의식과 더불어, 그 과정까지도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말은 쉽지 실제로는 무척 어려운 길이라 매번 갈등의 불씨를 만들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완벽해보였던 천재 외과의. 그에게 부족했던, 작아보였지만 매우 치명적인 한 조각. 그것을 채워가는 맥락 안에서 찾아낸 나름대로의 해석에 나는 '과정과 목적의 휴머니즘'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싶다. 불완전할 수는 있지만 그렇기에 존재의미가 돋보이는 인간다움, 그리고 휴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