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글

여성, 연예인, 정치인… 그보다 먼저 '사람'

내 마음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람을 가리고 있던 편견'들

by 이글로

편견 偏見


<말하는대로> 5회 차에 나선 출연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를 생각하다가, 문득 이 단어를 떠올렸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나와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공통된 키워드 같은 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걸 억지로 찾아서 끼워맞출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 회 출연자를 왜 3명으로 했을까?'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매회 3명 정도라면 포괄적인 주제가 사전에 정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 내가 생각해도 참 본질에서 벗어난 호기심 이건만, 그걸 담아둔 채로 살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흘러왔다.


별 영양가 없는 잡생각으로 시작한 것치고 결과는 꽤 유의미했다. 곽정은, 아웃사이더, 그리고 이준석. 세 사람의 버스킹을 들으며 메모한 내용들의 행간에서 내가 소화해야 할 것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그게 바로 위에 언급한 '편견'이다.


색안경 끼고 보면 무슨 짓을 해도 그 색깔


방송 시청 전, 본래 내가 우호적으로 봤던 사람은 아웃사이더 한 명뿐이었다. (지나고 보니 나머지 두 사람을 썩 달갑지 않게 여겼던 것도 결국 편견 때문이었더라.) 그래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만 들을까 고민했었는데, 마침 그의 버스킹 순서가 두 번째로 정해지는 바람에 곽정은의 이야기도 같이 들었다. 결국 '어차피 들은 김에 다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이준석의 이야기까지 듣게 됐고.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는 사람의 '겉모습'에 관한 수많은 편견이 있다. 개인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며 그런 편견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득하기도 한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그런 편견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1. 여성에 대한 편견

- 연애 칼럼니스트 곽정은


곽정은. 보통 연애 칼럼니스트, 혹은 섹스 칼럼니스트로 불리는 사람. 하지만 난 그보다 '남녀 심리 칼럼니스트'라 부르고 싶다. 뭐, 따지고 보면 결국 비슷한 표현이지만 좀 더 넓은 범위까지 포괄할 수 있는 의미에서다. 좀 더 나아가면 보편적인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줄 아는 '마음 칼럼니스트'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꽤 거창한 수식을 붙였지만, 원래 그녀에 대한 내 시각은 썩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마녀사냥>을 포함해 당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몇몇 '발언'들이 강렬하면서도 썩 좋지 않게 기억된 탓이다. 그렇다고 막 욕할 정도로 싫어했던 수준은 아니고, '좀 세 보이는' 내지는 '경험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운' 누님 정도였다고 할까.


침대는 과학, 아니 에X스죠.


하지만 오늘, 단 한 번의 길거리 토크를 들은 뒤 그런 마음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음… 좀 더 솔직히 하자면, 언젠가 서점에서 곽정은의 책을 발견해 몇 장 넘겨보던 그 순간부터 우호적인 쪽으로 변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 책, 사지는 않았습니다. 누님 죄송… =_=;)


왕십리역 광장 한복판에서 수줍게 청중을 모으던 모습. 곽정은이라는 사람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과거 이야기들. 한없이 자존감이 낮았던 자신의 지난 시간을 고백하며, 그녀는 우리 사회의 기저에 깔려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했다. 오랜 시간 습관적으로 사용돼 왔기에, 얼핏 편견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표현들.


여성에 대한 편견은 특히 성(性)과 관련된 측면에서 많이 발견된다.


곽정은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과 '자존감'이었지만, 그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라는 말이 내 귀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나는 어떤가.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하는 '이 세상의 반'을 과연 오롯이 바라보고 있는가?



2. 연예인에 대한 편견

- 자칭 '열외자' 아웃사이더


한때 그의 노래에 미쳤던 적이 있었다. <Better than Yesterday>의 아웃사이더 파트를 따라 부르다가 매번 좌절했었고, <외톨이>와 <주변인>을 들으며 센티멘탈한 고독에 빠진 적도 많았다. <피에로의 눈물> 3부작 시리즈나 프로젝트 일원으로 참여한 <심장병>은 지금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 곡이기도 하다. (처절해지고 싶을 때(?) 들으면 좋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화려해 보이는 뮤지션의 모습을 보지만, 그의 과거에도 만만찮은 굴곡이 있다. 아웃사이더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 안 풀린 인생'이다.


아웃사이더는 본래 작가 또는 언론인을 꿈꾸던 '글쟁이'였다. 과거 리쌍의 개리가 <회상>이라는 곡에서 읊었던 '매일 밤 꿈을 위해 난 글을 썼어'라는 가사처럼, 아웃사이더 역시 글쓰기를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던 길의 대학 문턱을 넘지 못했고, 그 한을 풀기 위해 랩을 시작했다.


논술 글짓기 대회 전국 1위 경력을 갖춘 그야말로 '클라스 인증'된 작가 지망생이었지만……


2004년 데뷔 후에도 그의 인생은 썩 잘 풀리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에 있는 그의 프로필에는 2006년 이전의 경력은 나와 있지 않다)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스케줄이 끝난 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 때문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야 했다. '쪽팔린다'는 이유로.


"넌 지금 잘못하고 있어!"라는 말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길 위에서 절망했을 때, 극도의 외로움에 고뇌하다가 도로 위에 몸을 던졌을 때, 그때 마주친 한 트럭 운전기사의 따뜻한 배려를 겪었을 때. 그 모든 경험을 담은 결과물이 그의 명곡 <외톨이>라는 스토리.



아웃사이더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었다. 하지만 역시 내 눈에 먼저 밟힌 건 '연예인에 대한 편견'이었다. TV를 켤 때마다 보이는 가수, 배우, 코미디언 등 수많은 연예인. 그들의 화려해 보이는 삶을 그저 축복받은 걸로만 생각하며 시기하고 질투하지는 않았나.


아니, 분명 수없이 시기하고 질투했을 것이다. 그들 각자의 인생이 어떤 굴곡을 품고 있을지 모르면서 고까운 시선을 가졌던 건 분명 벗어던져야 할 편견이다.



3. 정치인에 대한 편견

- 정치인이야, 기업인이야? 이준석


솔직히, 가장 반가울 게 없는 출연자였다. 곽정은에 대해서는 중립 정도였다면, 이준석에 대해서는 확실한 비호감 쪽이었다. 본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이준석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사람이다. 그에 대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수식어라면, '청년 보수 정치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보다 좀 더 아는 사람들은 하버드 대학 출신의 청년 기업가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게다. 그가 스스로 말했듯, '정치인인지 방송인인지 기업인인지'라는 멘트가 딱 어울리는 이유다.


나는 정치 성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좌파에 가깝다. 그런 고로, 아마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껄끄럽게 여겨졌던 건, 그동안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왔던 정치색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배포도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거다.


국회의원실에서 인턴 근무를 하다가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하지만, 본래 이준석은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 아니었다. '준비된 20대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는 그가 원해서 가진 게 아니란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왜 새누리당 후보가 됐는지, 왜 '박근혜 키즈'가 됐는지를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결고리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나는 이준석이라는 사람을 판단했고, 그의 주장을 삐딱하게만 들으며 어느새 색안경 너머의 사람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근거 불충분으로 인한 오류다.


"살면서 마주하게 된 사회의 부조리를 내 손으로 바꿔보겠다." 이준석이 정치 입문 제안을 수락한 이유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정치'라고,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건 그 나름대로의 선택이고 신념이었을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됐든 간에.


방송이 끝난 뒤, 이준석이라는 사람에 대해 형과 몇 마디 의견을 나눴다. 어쨌거나 그는 하버드에 진학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축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게다가 충분한 동기부여도 있었다. 욕먹을 걸 알면서도 정치에 입문한 건 분명 나름대로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에 대한 내 삐딱했던 시선은 그간 새누리당의 행보를 보며 쌓였던 불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내가 '정치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근거를 토대로 한 비판을 배워야 할 때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는 충분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안에 쌓여있는 꽤 많은 종류의 편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무엇이든 간에 그건 2차적인 문제다. 누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는지도 마찬가지다.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그 안에 자리 잡은 뿌리는 똑같다는 점이다. 이성과 감정을 갖고, 그것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누군가에 대한 모든 편견은,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온전히 인정한 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마땅하지 않을까.


뭐, 편견을 가지는 것 또한 개인의 자유의사에 달린 일이니 '반드시 편견을 깨야 한다'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편견이라는 색을 입히기 전,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을.


원래 쓰려던 감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 돼 버렸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나 싶다.


솔직히 방영 전엔 별 기대 안 했었는데… 은근히 꿀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간&사회', 그 철학이 담긴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