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글

"변하지 않아도 돼. 아니, 변하지 마."

<내성적인 보스> 완결 기념으로 써보는, A/S 리뷰

by 이글로

지난 1월 말, <내성적인 보스> 4화까지를 대상으로 리뷰 한 편을 '찌끄렸'었다.


흥미로웠다가 불쾌했던, 하지만 다시 기대하게 된 이야기



글을 다시 읽다 보니, 정말 찌끄렸다는 자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4화 마지막 채로운(박혜수 분)의 대사를 인용해놓은 부분은 역시나 불편하게 다가왔다.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됐음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뉘앙스를 자꾸 욱여넣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우여곡절을 넘고 넘어, 이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났다. 시원섭섭한 기분을 풀어낼 겸, 이번에는 16화 전체를 대상으로 다시 한번 소감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첫째는 지난번 글에서 성에 차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애프터서비스 차원이요, 둘째는 두 번의 리뷰를 쓰기에 충분할 만큼 마음에 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캡처-내보스1.JPG 은환기라는 캐릭터는 아마 배우 연우진의 인생 필모그래피가 되지 않을까. (feat. 동공지진 스탠바이)


제목의 겉 뜻대로 보자면, 본래 <내성적인 보스>에서 가리키는 내성적 인물은 은환기(연우진 분) 하나다. 하지만 대략만 훑어봐도, 이 스토리가 내성적 인물 여럿을 캐릭터로 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채지혜(한채아 분)와 모든 전개를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는 채원상(이한위 분)이 대표적.


전개가 거듭될수록, 내성적 인물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밝고 명랑하게만 보였던 은이수(공승연 분)가 그 좋은 예다. 좀 더 정확히는, 각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내성적인 면이 드러난다고 해야 적절할 게다. 결국 대단원을 눈앞에 둔 지금 와서 보니, '나도 내성적, 너도 내성적, 우리 모두 내성적'인 이야기가 돼 있더라.



중간 리뷰에서도 언급한 책 <혼자가 편한 사람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외향성과 내향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어느 한 가지로 100% 채워진 사람은 없다는 것. 다만 둘 중 어느 쪽의 비중이 높은가, 두 성향이 어느 정도 비율로 섞여 있는가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이 다르게 보일 뿐이라는 논리.


사실, 자신을 100% 드러내고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 본다. 타인의 시선을 지레 의식하게 되는, 그래서 어지간하면 감추고 싶어 하는 것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설령 주위에 모든 걸 오픈하고 사는 듯한 사람이 있다 해도, 정말 '모든 것을 오픈'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로 그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모두 내향성의 출발점인 건 아닐까. 본래 내향성이 강해서 무언가를 감추려는 것이든, 감추고 싶어 그러다 보니 그 부분에서만 내성적이 된 것이든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결국, 크든 작든 '내향성'은 모든 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가 분명하다.


86.jpg 열어본다 한들 사람의 속내라는 건, 본인이 아니면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feat. 혹시 이 미로 해결하시더라도 쉿!)


진정한 의미의 내향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만 하는 드라마. 과연 가능할까?


지난번 글 말미에 품었던 의문은 해결됐다. <내성적인 보스>는 충분한 즐거움과 되새길만한 의미를 함께 선사해줬다. 100%는 아니라도 내 기준에서 이 정도면 선방. 결말은 사리살짝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아쉬운 건지 염장질 당해서 약 오르는 건지 잘 모르겠…)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서는 드물게 굵직한 시사점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사건 플롯이나 인물 구도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안에서 던지는 메시지들은 주목할 만하다. 유일무이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히 유니크하달까.


그중에서도 나는 '변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라는 대목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은환기와 채로운, 두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한 번씩 반복되는 이 메시지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높은 중요도를 가진다.


사회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시하는 것 같아서, 그동안 사회 부적응자인 것처럼 취급돼 온 내성적 인간들에게 '억지로 바뀌지 않아도 된다'는 격려를 전하는 것 같아서다.


캡처-내보스4.JPG 한 남자 두고 싸우는(?) 사이에 이런 차분함이라니… 참 후레쉬하다.


그만 좀 하세요, 제발!


13일 방송됐던 15화의 마지막 씬. 강우일(윤박 분)을 팽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는 아버지 은복동(김응수 분)에게, 은환기는 시원한 사이다 일갈을 날린다. 안으로 안으로 눌러 담기만 했던 그가 드디어, '터진' 것이다. 이는 은복동이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 (은복동의 변화는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내성적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시뮬레이션 내지는 리허설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많은 것을 혼자 계산하고 재단하며 이리저리 따져본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감정을 느끼지만, 타인을 배려해 숨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표현하지 않는다 해서 아무렇지 않은 건 절대 아니건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게 '당연히 자기 뜻대로 따르는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나 보다.

외향적 인간과 내향적 인간은 어떤 것을 문제로 인식하는지부터 해결을 위한 가설 수립, 검토와 검증까지 모든 과정의 접근방식이 다르다. 난 외향적 인간이 아니기에 그들이 어떻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체계가 나와 다르다는 건 경험상 잘 안다.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물론 미리 신중하게 따져본다 해도, 답은 종종 어긋난다. 사람 일이라는 게 자로 잰 듯 딱딱 떨어지지는 않게 마련인지라, 100% 정답률 같은 건 허상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내성적 인간들이 혼자만의 시뮬레이션을 멈추지 않는 건, 그들에게 있어 그 방식이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무릇 사람이란, 그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때 가장 매력적인 법.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어, 아직은 작은 목소리로만 되뇔 뿐이지만… 작은 물결이나마 계속되다 보면 언젠가 분명 쟁점의 하나로 제법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캡처-내보스7.JPG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법도, 그들이 소통하는 방법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봤던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이 당당하다 인정받는 세상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이젠 좀 다르게 볼 수 있을 듯하다. 바야흐로 모든 가치를 여러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시대. 때로는 작은 목소리로도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때로는 조용하기에 더욱 강한 힘을 낼 수도 있음을, 보다 많은 이들이 알게 됐으면 한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얽힌 매듭을 풀어내려는 방법의 차이. 언뜻 사소해 보이는 차이로 인해 은환기와 채로운은 두 달가량에 걸친 멀고 험한 길을 돌아왔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로맨스라는 장식을 걷어내면, 우리네 인간관계의 미스터리 중 하나를 풀어줄 열쇠가 보일 것이다.


부디, 외향성과 내향성이 우열의 관계가 아닌 동반자의 관계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기를. 그때가 되면, 나도 억지로 성격을 바꿔보려는 고행을 멈추고 누구에게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변하지 않아도 돼. 아니, 변하지 마. 그게 바로 '너'니까."



라고.


캡처-내보스8.JPG 이 세상 모든 내성적 인간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 (절대 이 커플이 부러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디자인'이란? 욕망의 실현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