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글

'디자인'이란? 욕망의 실현 과정

비전문가 입장에서 바라본 '디자인'의 의미

by 이글로

지난 일요일 저녁, <디자인, 사람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jtbc 특집 다큐멘터리를 봤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욕하면서도 챙겨보는(?) 드라마 방송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기엔 심심해 IPTV 편성표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것.



생각해보면,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던 기억은 딱히 없다. 학부 전공 시절부터 각종 커리큘럼과 과 활동을 통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고루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영 관심이 없었다. 잘 하지 못해서 재미를 못 느꼈던 건지, 흥미가 없어서 잘 하지 못했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 뿐.


그러니 당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왜 보고 있었는가. 딴짓하면서 보느라 내내 집중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굵직한 내용과 흐름이 너무 생생하다. 흠… 아마 디자인Design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큐멘터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디자인이라는 말에는 늘 어느 정도의 흥미를 갖고 있었으니까.


기억의 다락방에 남은 것들을 닥닥 긁어 메모장에 옮겼다. 이틀 넘게 나갈 생각이 없어보이는 삐딱한 녀석을 쫓아낼 겸, 짤막한 글이나 한 편 써보자 싶어서.


20170223_171949_2567.jpg 진행자가 익숙한 얼굴이라서 그런 건가.


하나의 편견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디자인' 하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 아트Art. '디자이너' 하면 자연스레 겹쳐보이는 예술 작업. …모로 봐도 이건 편견이 맞다. 나는 왜 이런 편견을 갖게 됐을까? 이유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당장 포털 백과사전에서 '디자인'을 검색해보고 곧장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산업혁명 직후의 디자인은 순수미술에서 획득한 '미술적 요소'를 산업에 응용하는 픽토리얼 디자인pictorial design 이상으로 이해되지 못하였으나, 19세기부터는 기계·기술의 발달에 따른 대량생산과 기능주의 철학에 입각한 새로운 개념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 from。두산백과 <디자인> 항목 中


그래,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표현이 좀 어려워서 울컥했는데, 하나씩 뜯어보니 별 내용 아니더라.) 그러니까 나는 산업혁명 직후의 디자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시각 디자인Visual design'이라 부르는 분야를 디자인의 전부라 생각했다고나 할까.


하위 항목 하나를 전체인 양 정의하는, 그토록 날 세워 비판하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난 아예 매일 부둥켜 안고 살아온 셈이다.






<디자인, 사람을 만나다>는 디자인의 본질과 핵심을 풀어서 설명하는데 무게를 뒀다. 그만큼 디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할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뜻일 게다. 나와 같은 오해를 안고 있는 사람도 포함해서.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백과사전 요약은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 이 다큐멘터리는 여기서 '주어진 목적'이라는 부분을 좀 더 풀어서 전달해준다. Better than, 즉 기존의 것 혹은 다른 것보다 어떤 면에서든 더 나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디자인의 목적'이 될 수 있다.


기존의 것보다 가볍다거나, 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편의성 측면. 튼튼하다거나 저렴하다거나 하는 실용성 측면. 더 멋지거나 예쁘게 보이는 예술성 측면. 즉, 사람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감정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디자인의 영역에서 '목적'으로 다룰 수 있다.


Steve-Jobs-iPhone.jpg 그러고 보니 '디자인 파워'를 전세계에 과시한 사례가 참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갈구하는지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화 할 방법을 구상하며, 의도한 대로 잘 실현됐는지까지를 확인하는 일. 디자인은 이 모든 것을 총칭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빠져도 디자인이라는 말은 어색해진다. 허황된 공상에서 멈추거나, 완성했어도 별 가치가 없거나 할 테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Process을 한데 묶인, '세트메뉴'가 되어야만 디자인이라는 호칭이 딱 어울린다.



디자인이란? 생각하고, 구상하고, 방법을 찾아 실현하는 것.



한참 생각한 끝에 보다 짤막하게 압축해봤지만, 여전히 명쾌하지 않다. 익숙하게 쓰는 말일수록 뚜렷이 설명하기란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문득, 알고 지내는 문화심리학 박사님이 과거에 해주셨던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무언가가 우리 삶에 당연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나면 그 개념 자체는 점차 희미해진다는 말. 기계가 그렇고, 자동차가 그렇고, 에너지가 그렇듯, 디자인 역시 우리 삶의 당연한 부분 중 하나로 굳어진 듯하다.



무언가 필요하다 여기는 건 본능이요, 무언가 아름답거나 좋다고 느끼는 건 감성이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무의식의 영역이고 인간의 영역이라는 것. 본능에서 출발해 감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디자인은 주체도, 객체도 모두 '사람'이다.


흐음… 기본 이론서 하나 접해본 적 없는 비전문가로서 이 정도면 꽤 잘 정리한 게 아닐까.


20170223_164743_4602.jpg "사람에 의해 탄생되어, 사람을 위하는 디자인", 적절하게 잘 뽑은 슬로건이다.


늘 해오던 습관처럼, 글을 다 써놓은 뒤 제목을 고친다. 기억의 다락방 문 앞에서 꺼내와 붙여놓은 처음 제목을 들여다본다. '디자인 = 욕망의 실현'. 욕망이라는 표현이 좀 과한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두기로 한다. 다른 단어를 넣으면 영 느낌이 안 사는 데다가… 이 정도면 최소한 낚시질(?)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또 제목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실현' 뒤에 '과정'을 살그머니 붙인다. 디자인이란 발상부터 구현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개념이라 생각하니까. 그 다음, 등호 표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물음표를 넣은 뒤 앞뒤를 정리해본다. 흠,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이제 마지막 고민이 남았다.


다큐멘터리 제목이 <디자인, 사람을 만나다>였으니, 욕망 앞에 '사람의'를 넣는 게 좋으려나? …… 아니, 안 그래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욕망이란 건 사람의 전유물이지 않던가.




방송 화면 출처 : JTBC 홈페이지 특집 포토갤러리

http://tv.jtbc.joins.com/photo/pr10010098/pm10041369/detail/8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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