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 있을까? 드라마 <터널> 중간 리뷰
재미있다. 흥미롭다. 어느새 매주 손꼽아 기다리는 드라마가 됐다.
뭐… 객관성을 위해 아쉬운 점 몇 가지쯤은 지적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든다. 곰곰이 따져보면 없진 않을 텐데… 생각이 안 난다. 심지어 이야기 전개상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부분마저도 재미있었다. 숨 막히기 전에 해결돼서 그런 건가? 에라 모르겠다. 객관성 따위…
30년 전 과거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박광호(최진혁 분). 그 말을 듣고 있는 김선재(윤현민 분)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을 거다. 7화 마지막에 둘이 소리 빽빽 지르는 장면에서 김선재 표정을 보면 견적이 나온다.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
딱 이거다. 안 믿는 게 당연하고, 쉽게 믿어서도 안 될 이야기. 그걸 바로 믿고 수긍해버리면 이야기 개연성에 심각한 오류가 생길 테니 일단 한 번 정도는 안 믿어줘야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청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놓고 분량을 질질 끌면 욕먹기 딱 좋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박광호와 김선재의 30년 전 인연'을 투척한다. <터널>을 처음부터 시청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을, 연극으로 치자면 '방백'과도 같은 설정.
덕분에 자칫 복잡해졌을지도 모를 갈등은 풀렸다. 김선재가 박광호의 말을 완전히 믿게 됐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이상 '과거에서 왔다'는 주제를 놓고 분량을 잡아먹지 않을 거라는 점이 중요하다. 덕분에 전개가 좀 뻔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긴 하지만… 의심이 남아 있는 채로 두 사람이 파트너로 함께 한다는 설정보다는 나을 것이다. 강력반 형사들에게 '파트너'가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면 더더욱.
지난 16일(일) 8회 방송분에서 안개 밖으로 빠져나온 건, 신재이(이유영 분)와 박광호의 관계였다. 입양아 출신의 범죄심리학 교수인 신재이가, 박광호와의 특정 상황(군만두를 받아랏!)에서 보였던 언행들이 복선이었다. 신재이라는 캐릭터의 무미건조한 성격, 혹은 '듣고 씹는' 일이 비일비재한 특성을 고려했을 때, "저 만두 싫어해요"라고 분명히 표현한 것은 그냥 넘길 수 없었던 대목.
이후, 기억을 되짚어가는 신재이가 어린 시절 누군가와 함께 앉아 만두를 먹는 장면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에서야 '아~' 하고 혼자 탄성을 터뜨렸다. (눈치가 느린 편이라…… 더 빨리 감을 잡은 사람도 많을 듯.)
8회 방송분은 박광호가 30년이 지난 시점에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아내 신연숙(이시아 분)을 찾아 나서는 과정으로 많은 부분을 채웠다. 그 먹먹한 여정이 끝나던, 8회 마지막 장면에서 박광호와 신재이의 관계가 드러난다. 암시? 떡밥? 그런 거 아니다. 그냥 대놓고 보여줬다.
절반이 지났다. 이제 주요 캐릭터들 사이에 '시청자가 모르는' 갈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박광호와 신재이가 서로를 알아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안타까움 정도의 감정이 개입할 영역이지, 복잡 미묘한 갈등이 도드라질 영역은 아니다.
이제 이야기의 모든 선은 연쇄살인마 정호영(허성태 분)에게로 향한다. 박광호를 30년 후 시대로 불러온 인물. 김선재를 경찰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장본인. 신재이를 가혹한 삶으로 밀어 넣어버린 원인제공자. 드라마 <터널>에서 가히 모든 사건의 핵심 캐릭터라 할 만하다.
솔직히, <터널>의 소재와 스토리가 완전히 참신한 건 아니다. 시간여행이나 평행세계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매주 방송을 보며 나는 여러 가지 가설을 그려본다. 그리고, 그 안에 정호영이라는 캐릭터에 관한 정답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된다. 작가가 그중 어떤 '길'을 선택했으며, 어떻게 이야기를 그곳까지 이끌어갈 것인지. 그 과정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 시점에서 문득, 엔딩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본다.
드라마 <터널>은 과연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이 과연 가능한 구조일까? 1986년의 그 날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는 박광호가, 그때로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건 끝나는 걸까? 글쎄…… 확신할 수가 없다.
시간선의 어느 시점이 바뀌면, 그다음에 이어질 모든 상황 또한 바뀐다는 것. 시간여행이나 타임머신 등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이론이다. '바뀐다'라고 표현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기존에 있던 미래는 '없어지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박광호가 돌아간 뒤 2016년에 남게 될 김선재와 신재이, 전성식(조희봉 분)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 그전에… 시간을 뛰어넘어 이미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깨달은 박광호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미래를 아는 박광호'는 이미 그 시절의 박광호와 다른 사람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하나가 풀리고 또 다른 수수께끼가 찾아왔다. 비슷한 소재의 스토리를 많이 본 게… 이럴 땐 오히려 독이지 싶다.
9화 방영 이후 변수가 생겼습니다. 목진우(김민상 분)가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진범이었을 줄은 ;;; 이 글은 8화까지만 본 시점에 쓴 것이니 진범에 관한 오류는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