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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Sep 04. 2024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돌아보니 알게 됐다. 이전보다는 행복하다는 걸

5년 정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일에 지쳐 스스로가 소진 돼버린 듯했다.

그게 약 3개월 전 일이다.


평범한 사무행정직으로 들어가,

조직 내의 "모든 일"에 기웃거려야 하는

운영 총괄 자리까지 하다가 나왔다.

무척 작은 조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많은 경험과 깨달음이 남았다.

갈무리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


주된 일을 바꿨다.

올해 초부터 퇴근 후 부업으로 하던 일.

새로 창간한 온라인 미디어에

글을 써서 올리는 일이다.


퇴사 후, 내가 하던 일을 이어받은 후임자와

따로 자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게...
참 부러워요.


의문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인가?

정말 그런가?

글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솔직히, '쓰고 싶은 글'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두어 달 정도 힘들었다.

일에 지쳐 도망치듯 떠나온 뒤 도착한 곳.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듣던 순간에는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여느 직장인들이 그렇듯...

자신과 다른 현실을 사는 모습,

자기 관점에서 더 나은 모습을 가진 이에 대한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힘겹게 시간을 보냈다.

멀리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관점이 찾아왔던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까.


'일'이라는 걸 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과

연결고리가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본래 세상은 그렇게 생겨먹었으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꽤 행복한 편일 것이다.

어쨌거나 '글'을 쓰고 있으니까.

그걸로 적게나마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까.

아주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다고 봐야 마땅할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이 아니면 어떠한가.

빈 공간에 글을 쓰면서 하루를 보내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일 아니던가.


욕심에 사로잡혔던 것이지 싶다.

내가 원하는 글만 쓰고도 살 수 있는 삶은,

내게 언젠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점이다.

결코 한순간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띄엄띄엄했던 글이 적지 않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려 애쓸 줄 알던,

그 잃어버린 능력과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갈 길이 멀기에,

조급함은 넣어두는 편이 현명하다.




내가 원하는 글쓰기란,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조금 더 마음에 들게 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치열함이 있는 글쓰기다.


어차피 그런 글쓰기를 지금 할 수는 없다.

굶어 죽기를 각오하거나,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는 한,

일 끝나고 남는 시간에나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층 더 머리가 맑아진다.


나는 지금 걸어가는 중이다.

그 과정이 늘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다시 돌아본다. 다시 생각해 본다.

비로소 알게 됐다.

본래 일을 그만두기 전에 비하면,

분명 더 행복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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