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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Sep 29. 2024

걸음이 느린 시간과 거닐다

우연히 만난, 축복과도 같은 시간

살다 보면,

축복처럼 다가오는 우연이 있다.

어제는 분명, 그런 날이었다.

늘 똑같이 흐르고 있을 시간이,

'오늘은 천천히 가도 된다'라며 

어깨를, 등을 다독여주는 듯했던,

그런 하루.


시간의 느린 흐름을 느끼는 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하나의 순간을 '온몸으로 살아낼 때'에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감각이니까.

누구에게나 매 순간 기회가 주어지지만,

누구나 쉽게 잡을 수는 없는 값진 느낌.


어제, '달팽이 아지트 펜션'에서 열린

힐링 캠프에 참여하고 왔다.

본래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루만 참여하게 됐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적한 동네.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자정 즈음까지.

'힐링'이라는 주제로 꾸며진 단 한나절을 보냈다.

물리적으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끼기에는 한없이 길게 다가왔던

걸음이 느린 시간이었다.




힐링이 절실한 요즘이었다.

올해 그토록 싫었던 일을 떠났음에도,

조금이라도 즐거운 일을 찾았음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방랑에 대한 불안감.

그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잡았다.

평소의 나와는 달리,

별로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일지도...


단 하나의 동작을 제대로 해내기 위한 시간.

매 순간의 숨결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시간.

살아왔던 나날담담히 풀어내기 위한 시간.

모든 시간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움직이는 것, 숨 쉬는 것, 생각하는 것.

살면서 아무렇지 않게 해 왔던 것들이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넘겨왔던 것들이다.

그랬던 것들이었는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해 보니,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 안에 잘게 나눠진 무수한 순간이 있음을.

하나하나에 순간에 각자의 의미가 담겼음을.


자작하게 타들어가는 불꽃의 일렁임.

짙푸른 밤을 수놓는 무수한 반짝임.

코끝의 잔향처럼 잦아드는 금속의 떨림.

모든 순간이 저마다의 속도로 다가왔다.

'온 마음으로 대하고 있느냐'는 자문(自問)과 함께.


볼거리가 풍성한 곳에서 걸음이 느려지듯,

같은 시간에서도 느리게 갈 수 있음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내 마음가짐에 달린 것임을 다시 익혔다.




늦은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집으로 돌아오며 떠오른 감정을 갈무리해 두었다.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자고 난 아침.

곰곰이 되새겨보니 그것은 분명,

'행복한 꿈에서 깨어날 때의 아쉬움'이더라.


그래, 참 꿈같은 시간이었다.


현실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느꼈던 시간.

진부하지만 이보다 딱 들어맞는 표현을,

찾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아쉬움에 너무 오래 묶여있지는 않으려 한다.

꿈이란 언제든

다시 꿀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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