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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Dec 19. 2024

나는 당신을 미워했었습니다

미워했'었'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기를 바라며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 여겼습니다.

말투, 태도, 성격, 가치관 그 무엇도.

그저 이기심과 자만, 그리고 고집만이

내가 당신에게서 볼 수 있었던 전부였습니다.


뇌리에 박혀버린 그날 이후로

단 하나 당신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당신의 모든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깨달음 하나였을 겁니다.


이 나이를 먹고서는 압니다.

살아왔던 시대가 달랐고,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도 달랐기에,

무엇 하나 맞기 어려웠음을.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모든 것이 다른 당신과 내가,

그저 한 다리 건넌 혈연이라는

불가항력의 실로 이어진 탓에......

모든 것에서 어긋났을 뿐이었음을.


당신이 처음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던 날.

그날의 그 자리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면,

그날의 내가 지금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이날 이때껏 당신을 미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희미한 미련으로만 남겨둘 뿐이지만.


당신이 떠나시고 나면

쓰겠노라 다짐했던 말이 참 많았습니다.

어찌 다 풀어낼까 싶을 만큼 많고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신 뒤 펜을 잡았지만,

그 많았던 말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몇 마디 말들만 겨우 꺼내놓습니다.

이것이 모든 면에서 달랐던,

끝끝내 배울 점은커녕 상처만을 더해줬던,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나의 최선인가 봅니다.


당신을 그리워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년이 넘게 낫지 않았던 상처라서,

앞으로도 나을 거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더 넓은 시야와 깊은 마음을 갖게 되면

비로소 당신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이날 이때껏 당신을 미워하게 만든 그날,

그날 이전의 잘 생각나지 않는 좋았던 기억도,

조금씩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너무 늦어 말라붙어버린 눈물이라도

끄집어내 흘려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세기에 가까운 기나긴 삶,

살아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끝내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고,

미워하는 마음 버리지 못한 채 떠나보냈지만,

그것과 별개로 마지막 인사에는 진심을 담아봅니다.


평안하소서, 부디.

나 또한 평안하고자 노력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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