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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was not built in a day."

모든 걸 생각하려 하다가는, 생각만으로 끝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이글로

좀처럼 손을 놓지 못했었다. 이미 데스크를 통과해 올라간 기사니 그만 퇴근해도 되련만.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아 계속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타가 있지는 않은지, 고쳐 쓰다가 문장이 어색해지지는 않았는지, 좀 더 좋은 표현으로 고칠 수는 없을지.


어쩌다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기사를 그런 식으로 썼었고, 덕분에 '내 사전에 오타는 없다' 같은 제국주의 스타일 이미지를 얻은 적도 있었다. 문제는 그게 스스로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알면서도 고치지를 못했다는 것.


'오타 없는 글'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정말 원한 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완벽한 글'. 아마도 그것이었을 게다.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내가 스스로 만든, 오직 나만 풀 수 있는 족쇄였다. 물론 알고 있었다.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 어딘가에 분명 열쇠가 있었다는 걸.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잠겨있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지......



지적 받는다는 걸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여겼다. 모든 사실과 맥락을 이해해야, 비로소 내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조언도 없이, 혼자서 해내야만 한다고 믿었다. 너무 건방졌다, 고작 서른 해도 채 살지 않은 주제에. 아무리 살아도 '모든 것'을 통달할 수는 없는 법인데......


회사를 나오면 글이 술술 써질 줄 알았다. 그동안 생각만으로 담아두고 있었던 모든 글감들을 꽉꽉 채워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 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회사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였다.


고향에 내려와 하루하루 소일하던 중, 어릴 때 쓰던 2층 방에 올라가 봤다. 책장 곳곳에 꽂혀있는 낡은 노트들. 시를 쓰겠다고, 소설을 쓰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치던 시절. 노트를 가득 채운 뻔하디 뻔한 글 토막들. 스물 아홉 살의 눈으로 바라보니, 열 네 살의 글은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한 것 투성이였다.


바로 그때, 또 한 번 '현자타임'이 찾아오셨었나 보다.


그래, 원래 그런 거다. 지나고보면 완벽했던 건 없는 거다. 있더라도 정말 찾기 어려운 거다. 그래도 그 시절 끄적인 것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모든 걸 생각하려 하다가는, 생각만으로 끝나고 말 거다. 적당히 하면 된다. 지금 해놓은 모든 것들은 언젠가 내게 밑천이 될 테니까.



그래서 적는다. 몇 번이나 깨달았던 사실이지만, 그때마다 곧 잊곤 했었던 지극히 간단한 깨달음. 이번에야말로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지 않도록, 적는다.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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