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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사람들

역시 새벽엔 한껏 젖어들어야 제맛

by 이글로

술 한 잔 걸치고 난 늦은 밤.

강가에 부는 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스치고 지날 때.

머릿속엔 버릇처럼 이야깃거리가 떠오른다.

딱히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

그냥 나홀로 촉촉히 젖어드는 그런 이야기.


약간의 알코올이 핏줄을 타고 흐를 때면

늘 기분은 새롭다.

알고 있던 단어들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고,

두뇌 어디쯤을 계속 맴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럴 때 단어들의 새로운 조합이 나오곤 한다.

감성적으로, 때론 창의적으로.

글에 있어 정해진 공식 같은 건 없다고,

거칠게 항의하듯 마구잡이로 피어오른다.


사람을 낚노라 했던 강태공처럼,

기다린다. 이거다 싶은 녀석이 떠오를 때까지.

적당한 것을 낚아올린다.

그러면서도 못내 아쉽다.

건져내지 못한 것들은 잘 갈무리해서

노트 한 페이지에 적어둔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어디에 적었었는지조차 가물거릴 테지만.


사색과 상상의 반복.

밤을 걷는다는 건,

로맨틱하면서도 애달픈 숙명이다.

많은 이들이 내일을 기약하는 이 순간,

누군가는 오늘을 되짚고 어제를 곱씹는다.

그러다 보면,

순식간에 몇 년을 거스르기도 하고,

실존하지 않는 나만의 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막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너무 많은 생각의 지류가 두려운 적도 있었다.

모두의 시간은 흐르는데,

내 시간만 자꾸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아서.

그럴 때면,

스스로가 미치도록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이제는 안다.

처음 펜을 들었던 그 언젠가부터,

이건 그냥 그렇게 정해진 길이었을지 모른다고.

처음부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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