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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감성의 사치, 좀 더 지나면 내겐 '철 없는 객기'가 될 것 같아서.

by 이글로

스물 여섯.

비교적 빠르다 생각하는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스물 아홉.

비교적 빠르다 생각하는 나이에 일을 그만뒀다.


괜찮은 일자리였냐고? 글쎄, 그건 '괜찮다'의 기준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답해야 할 것이다.


돈?

서울 강남-서초 즈음에 자취방을 두고 살았던 몇 년. 솔직히 금전적인 측면에서 따지면 그다지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자리였다. 수십만 원씩 하던 월세에, 보험 적금 들어놓았던 거 몇 개 붓고 남은 돈. 먹고 입는데 들어가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그 돈으로 하고 싶었던 걸 모두 하기엔 내 욕심이 좀 많았다.


적성?

글 쓰는 거야 말할 필요도 없고, 게임에도 어지간히 많은 시간을 쏟았던 과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난 확실히 축복 받은 사람이었다. 다만, 현실적인 욕심과 자꾸 뒤처지는 듯한 박탈감을 이겨내고 그 일을 계속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못했을 뿐.


재능?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건대, 나는 본래부터 기자라는 역할을 하기에 적당한 성격은 아니었다. 생각이 많았고, 호기심도 많았다.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는 일보다, 내 시각을 타인에게 어필하는 쪽이 더 좋았다. 게다가 막상 게임 기자로 일을 해보니, 게임에 대한 내 애정이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또 누군가는 차곡차곡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시기. 어찌 보면 무척이나 중요할 이 때에, 나는 거의 매일 늦잠이나 실컷 자고 일어난다. 낮에는 카페에 앉아, 밤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비현실적이고 감성팔이스러운 글을 끄적인다.


불안하지 않냐고? 어찌 불안하지 않을까.

내게도 이 시기는 너무 중요하다.

앞서 적은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 스스로 그렇게 평한다. 책임져야 할 것이라곤 내 몸뚱이 하나 뿐인 이 때.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다. 아…… 요 며칠 적었던 첫사랑에 관해서는 고민해본 적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건 뭐, 아직 혼자만의 김칫국이니까 일단 제껴두고.


차고 넘치게 풍족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내 한 몸 몇 달 정도 굶지 않을 만한 여윳돈은 모아뒀다. 본래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리저리 놀러다니는 것보다는, 어딘가 짱박혀 조용히 시간 보내는 쪽을 좋아하는 성격. 혼자 있을 때는 대부분 짠돌이로 사는 탓에 당분간 잔고는 넉넉할 예정이다.


한 마디로, 아직은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는 된다는 얘기다. 언제까지나 계속 이러고 살 수는 없으니 조만간 먹고살 길을 알아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답을 찾아보고 싶다.



돌이켜보면 내 20대에는 이렇다 할 낭만이 없었다. 흔히들 꼽는 사랑이라곤, 서툴디 서툰 일방통행과 실수연발로 덮여있다. 자전거 여행 같은 특별한 짓(?)도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충분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2015년. 남은 건 고작 한 달. 내 남은 20대도 이제 한 달. 지금 이 시기, 지금 내 형편에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직도 많다. 그걸 다 해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다 못해본 채 흘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 시간이라도 마음껏,

감성의 사치를 누려보고 싶다. 마음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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