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씹' 따위에 상처 받지 말아요. 안 그래도 살기 피곤한데...
"너 카카오톡 안 쓰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대학교 언젠가 즈음이었을 거다. 얼리어답터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누려온 덕분에, 군대 갔다오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도 헷갈린다. 아마 전일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첫 스마트폰으로 '갤럭시S'를 구매했고, 남들보다 좀 늦게 카카오톡이라는 놈을 알게 됐다. 지금에야 엄청나게 덩치가 커진 기업이지만, 그 당시엔 '카카오톡? 뭔 이름이 이래?'라고 생각했었지, 아마......
단체채팅의 신기원. 표현이 좀 거창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때 내 심정은 그랬다. 채팅이라곤 컴퓨터 앞에서만 해왔던 입장에서, 문자메시지 쓰듯 손 위에서 여러 친구와 한꺼번에 떠들 수 있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말(Voice)보다 글(Text)로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 기질에 최적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아무리 새로운 경험일지라도, 인간의 적응력은 훨씬 위대한 법. 나에게도 곧 단톡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무덤덤해졌다. 몇 명이 있는 단톡방이건 알림은 '당연히' 꺼놔야 하는 것이 됐다. 폰 꺼내드는 빈도가 워낙 짧은 탓에 여전히 카톡 응답속도는 기가 인터넷급이지만.
그러면서 자연스레 찾아온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읽씹(읽고 씹기, 무응답)'이다. 현실 말수는 적었지만 텍스트 소통량은 끝내줬던, 그러면서도 딱히 유머감각이 뛰어나지 않았던 나는 어느새 '마침표 찍기'의 단골이 돼 있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어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왜 다들 말이 없지? 재미없으니까 좀 닥치고 찌그러지라는 의미인가? 그걸 꼭 말로 해줘야 알아듣냐는 타박인가? 그것도 아니면 저 말만 많은 핵노잼 새끼 빼고 다른 방을 파자는 암묵적 합의......?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져갔다.
한동안 단톡방 말수를 줄여보려고 했다. 길게 쓰려다 말고 앞뒤 잘라 툭툭 내뱉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읽씹'을 시전하기도 했다. 폰을 저만치 밀어둔 채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 모든 게 나 혼자의 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말주변 없고 눈치도 느리고 유머감각이 부족함을 콤플렉스로 삼고 있던, 스스로가 만들어낸 망상.
누구도 내가 생각했던 메시지를 표출한 바 없었다. 그건 그냥, '읽었는데 딱히 할 말은 없는' 것일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 같은 건 아니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걸 나 혼자 확대해석한 것일 뿐이다. 뭐, 까놓고 말해서 그 중 누군가가 실제로 '저 새끼 말 많네.' '아, 재미도 없는데 그만 좀 하지.' '쟤 빼고 다른 방 만들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눈치가 느려서......
생각해보니, 비단 단톡방 뿐만이 아니다. 1:1 카톡에서도 나는 종종 마침표를 맡는다. 누군가의 말을 읽고 답을 안 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그냥 천성이 그리 생겨먹은 탓이다. 상대가 누구인지를 가리지 않고, 마지막 멘트를 내가 한 뒤 '읽씹' 당하는 쪽이 더 편한 그런 타입. 그래서 가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마지막 인사'가 연출되기도 한다.
단톡방에서 마침표를 자주 찍어댄 탓인지, 요즘 몇몇 지인이 '마침표 기질'에 대해 고민상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란 백인백색 천차만별이라는데, 어쩜 그렇게 내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나는 그들에게 떳떳하게 말해준다. 온갖 망상으로 데코레이션된 나의 마침표 라이프를. 보수적인지 개방적인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내 선비기질과 함께.
그리고 나서, 부디 그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수롭지 않게' 되묻는다.
마침표 찍는 게 뭐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