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소리에 미치다 너에게 미치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더니, 이젠 멈출 수가 없다……

by 이글로

그땐 참, 고음 지르기가 열풍이었다. 마치 그것이 노래의 전부인 양, 무던히도 질러댔다. 미친놈처럼 꺅꺅 꽥꽥, 음정이 깨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들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놈들이 모인 집단이라, 다른 사람의 노래에 귀를 잘 기울이지도 않았다. 애초에 음정이 깨지는 걸 잡아낼 만큼 귀가 예민한 녀석이 드물기도 했고.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지면서도 피식 웃음이 난다. 티끌만큼이나마 시야가 넓어지긴 한 건지, 요즘은 그렇게까지 고음에 집착하지 않는 편. 대신 노래를 들을 때, 잔잔하게 깔리는 부분에 귀를 쫑긋 세운다. 전주는 어떻게 들어가고, 도입부를 시작하는 목소리는 어떤 느낌인지.


관점을 바꾸니 새로운 영역이 열렸다. 조곤조곤 읊조리는 듯한 노래, 감정선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독백하듯 부르는 노래들로부터 이따금씩 느껴지는 울컥하는 감정. 그 모든 게 좋아지더라.



요즘 노래를 부를 때는, 예전과 달리 도입부와 비교적 낮은 음의 파트를 부르는데 신중하게 된다. 듣는 사람 하나 없는 방에서 혼자 흥얼거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제 발이 저려 호흡이나 소리 내는 것 하나하나 까다롭게 짚어보곤 하는 것이다. 최근 녹음 몇 번 해서 들어본 뒤 OTL과 함께 얻은 습관이다.


난 보컬에 관해 완전 문외한이다. 학원만 가봤을 뿐 장기적으로 꾸준히 트레이닝 같은 걸 받아본 적은 없다. 발성이나 호흡, 창법 같은 걸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고, 내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가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다. 노래방에서 곡 제목과 함께 출력되는 기본 음정 같은 건 그저 장식(?)처럼 여겨온, 딱 그 수준이다.


다만 이리저리 귀동냥으로 들은 이론 같은 건 꽤 돼서, 그것들을 떠올리며 시도해볼 때는 있다. 어차피 직업으로 삼거나 오디션/콘테스트 같은 곳에 나갈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니 십중팔구는 그때그때 제일 편한 방식으로 부르고 말지만. 까짓거, 되는대로 즐기는 거지 뭐……



노래방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편.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같이 갈 누군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가면 은근히 분위기에 휩쓸리는 타입. 부르고 싶은 것보다는 이전 사람이 만들어놓은 분위기를 깨지 않는 선곡을 하는 편이다. 스스로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타입이랄까……


그래서 요즘은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코인 노래방을 찾는다. 시간제가 아닌 코인제라서 내키는 대로 시간을 때울 수도 있고, 온전히 노래에만 집중하기도 편하다. 무엇보다도 누구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그 날 끌리는 노래를 맘껏 부르고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좋다. (Yeah~!) 매일 귀가할 때 쯤이면, 쉬어버린 목 만큼이나 듬뿍 돋은 흥을 안고 돌아온다. 그런 날 밤에는 감성팔이 글을 끄적일 에너지도 덩달아 한가득.



시각을 바꾼 뒤, 익히 아는 노래들도 새롭게 들릴 때가 종종 있다. 전주가 끝나고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기존에 보이지 않던 감정을 발견한달까. 같은 흐름을 타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곡이건만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그 때문인지 종종 시작하는 박자를 놓치곤 한다. '도입부는 거들 뿐'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하던 과거에는 오히려 하지 않던 실수인데, 요즘 부쩍 잦다. 스스로 '박치'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 곡의 노래는 도입부에서 감정의 씨앗을 심는다. 노래가 흐름에 따라 곡에 담긴 감정은 서서히 싹을 틔우고 몸집을 키워간다. 후렴에 이르러 우뚝 선 자태를 보여주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면서 격하게 터져나온다. 심어뒀던 씨앗이 자라나 비로소 열매를 맺듯이.


곡에서 말하고자 한 감정의 결과는 분명 마지막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그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에 좀 더 귀를 기울이면 노래에 담긴 감정이 한층 깊이 있게 다가온다. 요즘 음악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달까.


얼마 전, 그 아이와 함께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다. "예전보다 노래를 잘하게 된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게 진심이었든 빈말이었든 상관 없다. 아무래도 난, 이 나이에 이르러 한 번 더 미친 게 맞는 것 같다. '낮은 소리'에 대해서도, 그 아이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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