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선 화가가 죽기 전에 깨달은 것들에 대하여
조선시대에 어떤 아이가 있었어.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림을 좋아했고 또 잘 그렸어.
어머니는 종종 그를 낡은 절에 데려가 아들의 앞날에 복이 가득하길 부처님께 기도드리곤 했어.
아이는 그 절에 갈 때마다 법당 안의 낡고 빛바랜 탱화를 바라보았어.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어.
"훗날 내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이 절의 탱화를 멋지게 다시 그려주리라.”
그리고 이 다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마음 깊이 새겨진 꿈이자 소명이 되었어.
세월이 흘러 그는 아주 실력 있고 유명한 화가가 되었어. 당대의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정도였지.
그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되자, 그는 젊고 부유한 또래 친구들을 따라 기생집에 자주 드나들었어.
그리고 어느새 기생들의 치맛폭에 둘러싸여 그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기름진 고기에 술을 진탕 마시며 잠드는 날이 많아졌지.
그런데 그때마다 마음 한편에선 어머니가 생각났어. 아들의 성공을 끝내 못 보고 돌아가신 내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갔던 그 낡은 법당 안의 빛바랜 탱화가 떠올랐어.
'아…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죽기 전에 어서 법당 안의 탱화를 새로 완성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의 몸은 불규칙한 생활과 잦은 음주, 방탕한 나날들로 인해 어느새 서서히 병세가 완연해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결국에는 붓을 들고 앉아있을 수 조차 없게 되었지.
그림이라면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었는데,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일 중에 오직 그림만큼은 죽을 때까지 쉽게 그려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야.
모든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고,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유한하고, 시간이 감에 따라 우리는 점차 죽음을 향해 필연적으로 시들어 갈 수밖에 없기에, 지금 쉽게 하던 일도 언젠가는 힘에 부칠 날이 온다는 것을... 오늘의 내가, 결코 과거의 생생한 나를 이길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실감하게 된 거야.
하지만 그는, 떠날 때 떠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손짓하듯이 끌어당기는 그 마지막 소명을 꼭 이루고 가고 싶었어.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을 절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 친구는 "몇 월 몇 시에 데려다주겠노라" 약속했지.
그날이 오면 그는 자신의 마지막 모든 에너지를 쏟아 걸작을 완성할 것이고, 어머니가 자신의 축복을 빌어주던 그 평화로운 법당 안에서 그렇게 고꾸라져 갈 수 있다면 더는 여한이 없을 것 같았어.
그는 그동안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을 만나 여러 일들도 많이 겪어봤어. 하지만 끝엔 항상 잿빛 공허함이 남았어.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밑 빠진 독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더 자극적이고 달콤한 걸 들이켰어.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알 수 없는 갈증만 심해질 뿐이었지.
하지만 이제 깨달았어.
밑 빠진 독 같던 자신이 충만해지려면 바로 자기만의 강물에 잠겨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깨달은 자기만의 강물은 바로 어머니의 축복 기도와 정갈한 풍경 소리가 고요히 감싸던 바로 그 절, 그 법당이었어.
"아, 내가 진작 왔어야 할 곳이 여기였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거였구나. 이것이야말로 나의 영혼을 채워줄 수 있구나."
그러나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어. 친구랑 만나기로 약속한 바로 전날,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거든.
나는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더라.
누구나 자기 삶을 채우는 ‘자기만의 강물’을 하나쯤은 품고 살아갈 텐데, 어떤 일을 그 강물로 삼을지는 각자의 선택일 거야.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곤 해. 오늘 죽더라도 크게 후회하지 않을 일은 무엇일까 하고.
설령 돈이 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 영혼이 가장 고요하고 충만해지는 자리는 어디인가. 내가 있어야 할 법당은 어디이며, 내가 끝내 그려야 할 탱화는 무엇인가...
그리고 혹시 그 탱화를 ‘나중에’라며 미루다, 붓을 들 힘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도 조심스레 돌아본다.
당신만의 고요하고 충만한 법당, 당신이 그리고 싶은 탱화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