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들건들,

by 유이경
자세가 좋지 않고 걸음걸이도 엉성했다. 45킬로그램도 안 나가는 몸으로 쿵쿵거리며 품위 없이 걸었다. 부유하거나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고, 우아하거나 고상한 느낌도 없었다. 도무지 상속녀나 사교계 젊은 여인의 면모가 보이지 않아 영화감독에게 그 자신의 역할로 뽑히긴 어려울 듯했다.


시그리드 누네즈,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중 p13




내 이야기인가. 물론 45킬로그램 이야기 빼고, 그 자신의 역할 부분 빼고. 책을 읽다가 괜히 멈춰서 킬킬거렸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내 걸음걸이를 표현하는 단어는 '건들건들'이었다. 남들의 말에 의하면 내 외모는 여성스럽고 얌전해 보인다고 한다(여성스럽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외모에 작은 체구 때문인지 십 대 때부터 유지해온 나의 건들건들거리는 걸음걸이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는 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도 나의 시그니처 걸음걸이 덕분에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조그마한 여자애가 참 희한하게 걷는다 싶어 보면 너였다고 했다. 그런 목격담(?)은 잊을 틈이 없이 줄줄이 읊어졌다.


그래도 서른 이후부터는 사회적 지위(가 있었는지 사실 여부는 모르겠으나)를 고려해 나름 신경을 쓰다 보니 좀 얌전해졌다. 옆으로 많이 누워있던 팔자를 좀 세우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운스를 없애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의 본성은 자꾸 혼자 있을 때 튀어나온다. 혼자 걸을 때, 특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을 때면 어김없이 십 대와 이십 대 때의 내가 나온다. 그런 순간이 나쁘지 않다. 아니, 힐링의 순간이 된달까.


산책할 때는 아니다. 산책은 내게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용 걸음걸이가 나온다. 틈을 깨고 튀어나오는 그 순간들은 걷는 행위에 의미가 없이 혼자 걸을 때에 나온다. 목적이 있어 길을 나섰으나 급하거나 대단한 목적이 아닌 사소한 일로 걸어야 할 때, 그래서 매우 귀찮아서 투덜거리고 있을 때. 그런 순간에 찾아오는 이너 피스.


생각해보면 나는 어떻게든 힐링의 순간을 찾으려 하는 듯하다. 본능이랄까. 나는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남편이 콧등도 안 뀌는 내 성격의 진실, 예민. 예민한 만큼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 그래서 하루의 반은 거의 체해 있었다. 나이 들면서 걸음걸이가 바뀐 것처럼 예민함도, 체하는 횟수도 많이 나아지는 쪽으로 달라졌지만 예민함의 강도가 약해졌을 뿐 없어진 건 아니었다. 그런 예민함을 누르기 위해 뭔가 잔재미를 찾은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도 뭐 할 수 없다. 나도 조금, 아니 좀 많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건 왜 쓰기 시작한 거야. 캐릭터 설명에 감정 이입해서? 쓰다 보니까 되게 지루하다.

그만 쓸란다. 재미없어.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리뷰 써야 돼. 그 책은 재미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