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에서 두 가족 중 한 가족은 폭력 경험이 있다고 하니,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과 폭력은 특수하기보다는 보편적 상황에 가깝다.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p131
아이의 질문에 긴장할 때가 있다. 내 엄마를 사랑하냐는 질문이 나올 때다.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긴장하는 이유는 간혹 뒤이어 나오는 질문 때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는 늘 몇 초 멈칫하게 된다. 그 몇 초를 아이가 눈치챌까 봐, 그리고 내 대답이 거짓이란 걸 눈치챌까 봐 걱정한다. 엄마, 그럼 할아버지도 사랑해? 응, 그럼. 평정심으로 가장하지만 거짓을 말하는 순간의 마음은 매번 적응하지 못하고 불쑥 까칠해진다.
아이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지 않았을까. 나와 내 엄마의 관계와 나와 내 아버지의 관계가 다르다는 걸. 아이 앞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지만 이제 아이는 웬만한 건 다 아는 열 살이다. 하지만 왜 그런지, 어느 정도로 다른지 알 수 없겠지.
언젠가는 아이에게 엄마가 어떤 집에서 자랐는지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외갓집에 가면 묘하게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떠도는지, 왜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겠지.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모든 집이 우리 집처럼 어쩌다 한 번 말다툼하는 걸로 부부싸움을 끝내는 집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수많은 가정 폭력 관련 뉴스들이 마냥 동떨어진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위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직까지 한국에서 가족 안의 폭력은 특수하기보다는 보편적 상황이라는 걸, 그래서 앞으로 만날 친구들 중에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기를 바란다. 그 친구가 힘들게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다만 낯선 생물을 본 것 같은 표정만은 짓지 않기를 소원한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상상한다는 건 꽤나 빈약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가정 폭력이라는 범죄에 좀 더 섬세하게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쉽게 사람의 상처에 대해 지난 일이라고, 그래도 가족이지 않냐고, 잊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종류의 상처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용서와 화해, 그딴 말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이런 폭력의 경험은 사람 자체를 뒤틀어버리는 경험이라는 걸 알지는 못해도 인정은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너무 큰 걸 바라는 걸까. 공부를 잘하고 성공한 직업을 가지는 것 보다 나는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느리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며칠 전 감기 기운에 반나절을 이부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무슨 테스트를 해 보았다. 어두움에 대한 테스트였다. 평균보다 3% 정도 어두운 편이라고 결과가 나왔다. 많이 밝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평균보다는 어둡구나 싶었다. 그럼 예전의 나라면 어느 정도일까. 예전의 나를 대입해 다시 해보니 30% 정도 더 어둡다고 나왔다. 나, 정말 많이 어두웠구나. 문항별로 답을 선택하면서도 느꼈다. 아주 온몸이 파괴적인 복수심에 들끓고 있었구나.
30% 정도 더 어두웠던 그 시절의 나는 매일 저녁 집 근처에 도착하면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동태를 살폈다. 오늘은 집안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까, 쿵쿵 귀에 울리는 내 심장 소리를 달고서 바짝 긴장한 채로 말이다. 머리가 클수록 귀가 시간은 늦어졌다. 지옥 같은 집에 들어가는 게 끔찍해 그곳에서 혼자 당하고 있을 엄마를 구해야 한다는 의무를 저버렸다. 그런 나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밤의 어둠을 헤매고 다녔다. 어둠은 독이 되어 쌓였고, 그 독은 나 스스로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혹독한 말로 뿌려졌다.
생각 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그 시간들을 안전한 지금의 시간에 돌이켜본다. 다행이다. 지난 일이다. 채 아물지 못한 상흔은 아직 간직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안심한다. 회복 가능할 정도로만 망가진 채로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는 것에, 지금은 멀쩡한 척 잘 살고 있다는 것에, 아이가 엄마가 그런 어둠을 지녔었고 아직 조금은 지니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에, 이제는 그런 걸 잘 숨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안심한다.
어제 아이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첫인상에 대해 말해줬다. 어릴 때부터 주야장천 실제 성격과 다르게 들어왔던 말들, 도도, 얌전, 여성스러움, 지적 등등. 며칠 전에 또 들었다고 하니 아이 반응이 실감 나는 연기로 돌아왔다. 우웨웩. 이게 토하고 싶을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잖아? 눈이 뒤집어지게 비웃고 있는 아이를 뒤로 하고 남편에게 아이 반응을 이르며 대체 얜 날 뭘로 보는 건지 모르겠다 했더니 바로 남편이 답한다. 그냥 웃긴 엄마로 보는 거지.
어처구니없어야 할 텐데, 비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았다. 웃긴 엄마. 두렵거나 어렵거나 불쌍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냥 웃긴 엄마'. 내 부모와는 다른 부모라는 걸 인정받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길에서 나와 마주치면 엄마!라고 크게 부르며 반가워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들던 느낌이었다. 길에서 아버지를 발견하면 소스라치며 도망치고, 엄마를 발견하면 복잡한 마음으로 쭈뼛대며 다가가던 내가 오버랩되어서였다. 이렇게 아이에게 나는 항상 위안받는다. 위로받는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이가 주는 사랑이 나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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