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군가가 절대 불변의 행성에 살고 있다면, 그가 할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p106
내가 선택할 건 오늘 점심 식사 메뉴 정도. 정해진 일과를 한다. 정해진 곳에 가서 일을 하고 정해진 곳에 가서 잠을 잔다. 절대 불변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은 389년 후 소멸한다. 그때까지는 모두 각자 정해진 생명 주기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한다. 생각은 적어지고, 감정도 적어진다. 크게 기쁠 일도, 슬퍼할 일도 없다. 이런 게 안정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 비교할 시기도, 대상도 없기 때문에 안정이 무언지도 모르겠지.
이런 삶은 어떨까. 바로 이건 싫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칼 세이건이 바란 대답은 아닐 텐데.)
왜 사는지 모르겠단 이야기를 초등학생도 한다. 매일을 반복하며 시간을 때우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생각도 해본다. 살아가는 데에 소명이랄까 그런 게 있지 않은 이상 왜 사는지 알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우스갯소리로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해오긴 했지만 요샌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생각만 많아진다. 과학자들처럼 무언가 결과가 도출되는 고민과 생각이면 좋으련만 내 안에서 겉돌기만 하는 생각은 필요가 없다. 그저 속을 갉아먹을 뿐이지. 생각이 많은 게 고민인 사람에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세상은 살짝 매력적이다.
정해진 대로 사는 것에 대한 유혹은 나보다 능력주의가 판치는 요즘 세상, "모든 건 부족한 네 탓이야."라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일 거다.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이 어디 있나, 자, 자유롭게 네가 선택해. 자유라는 말로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하고 결과를 책임지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사회를 보고 있으면 내 욕심으로 낳은 내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이런 곳에 내가 너를 던져놓았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런 행성에 대해 꿈을 꾸는 게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오늘 밤에도 선택을 한다. 맥주를 마실까 말까. 마셔야지. 어떤 안주를 먹을까. 이건 A or B가 아니라 조금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선택해야지. 아니, 선택이 필요 없는, 절대 불변의 행성에 살고 있다면 이런 소소한 선택 따위 없이 그냥 정해진 대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 멸치와 감자튀김을 놓고 맥주를 마실 거다. 그게 더 편할까? 안정적일까? 지금이 더 자유로울까? 행복할까? 생각해봤자 모르겠는 생각만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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