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p558
이 나이가 되면 달라질 줄 알았지. 자기 소개 따위야, 하는 마음이 들 줄 알았지. 새 학년이 되면 으레 하는 자기 소개 차례를 기다리며 시시각각 얼어붙던 아이는 사라질 줄 알았지.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소개하는 게 참 어렵다.
내가 나를 소개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요약해서 잘 이야기하는 걸까. 나는 나를 뭐라 표현해야 할지 그 언어를 아직도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나, 그게 중요한가? 당신들이 보는 내가 더 중요한 세상, 그게 언제나 그렇듯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일 텐데. 하긴 자기 소개라는 비일상적인 시간을 처음 시작과 함께 가져보는 것도 나쁜 발상은 아니다. 자, 나를 평가하기 전에 내 이야기를 들어보렴. 그 또한 나를 평가하는 시작일지라도. 그래, 내가 매번 자기 소개 앞에 시니컬해지는 건 단순히 내가 자기 소개에 약한 인간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자기 소개란 것과 멀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잦아지는 느낌이다. 아이가 새 학년을 맞이할 때마다 새 학년의 새로운 아이 엄마들을 만나고, 이래저래 참여하게 되는 모임들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그럴 때마다 필요한 건 뭐? 자기 소개. 아, 작년엔 책에 실어야 한다고 출판사에서 자기 소개를 써 달라고 했었다. 그때 몇날 며칠을 고심했는지. 그럼 좀 나아질 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자기 소개에 젬병이다.
지난 주에 충동적으로 글을 함께 쓰는 클럽에 참여했다. 어떤 모임에서든 자기 소개는 필수. 그리고 글 쓰는 모임이니만큼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것들도 필수. 젬병인 자기 소개는 둘째 치고 다른 질문들 앞에서 턱턱 막힌다. 글을 쓰려는 이유는 무언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나도 모르겠는, 작년 하반기 내내 떠오르던 질문들, 하지만 모른 척 하고 싶었던 질문들. 나는 왜 쓰는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아니 어떤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미루고 싶어 외면했던 숙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졌다. 엄두가 나지 않는 거대한 질문 앞에선 어쩔 수 없다. 그냥 쉽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수밖에. 그리고 그냥 하는 수밖에.
글을 쓰려는 이유부터 해치워보자. 어린 시절의 버릇 같았던 글쓰기가 언젠가부터 숙제처럼 느껴진다. 쓰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누가 나를 혼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글을 손에서 놓아버리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괜히 가만히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며 한 번씩 째려본다. 그런다고 내가 쓸 줄 알아, 오기를 부리면서 찜찜함을 떨쳐내질 못한다. 그래놓곤 글을 하나 완성하고 나면 그렇게 속이 편하다. 이 이유 없는 루틴을 반복하면서 생각한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아직도 모르겠다. 우선은 내 남은 인생의 숙제겠거나 생각할 수밖에. 해야 하니까 해야 한다고 여길 수밖에.
그럼 앞으로 뭘 쓸 건가. 그건 쓰다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무책임할 수도. 하지만 무책임만은 아니다. 난 글엔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쓰다보면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힘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 가게 하는 힘이. 칼 세이건이 말한 것과 의미는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는 글쓰기를 통해서 '마법사'가 될 수도 있다.
어딘지 모를 그곳에 가기 전, 지금은 내가 쓰던 글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 책 구절을 읽다가 떠오른, 실상은 그 구절과 그 구절이 나온 책과는 상관없이 내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는 글들 말이다. 마음대로 생각이 번지는 대로 떠들어대다 보면 언젠간 유의미한 순간들이, 글들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다소 대책없는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유의미한 그 무언가로 옮겨갈 수 있는 찰나를 위해 지금의 글들을 쌓아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런데 무엇과 연결되는 걸까 나는, 쓰기를 통해? 오직 쓰기만이 연결해주는 그걸 위해 나는 이렇게 헐벗은 채 준비되어 있는 걸까?
한강, <디 에센셜: 한강> 중 산문 "출간 후에", p345
글쓰기가 나를 밀고 생명 쪽으로 갔을 뿐이다.
같은 책 같은 글, p356
나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좀더 나와 연결되는 기분을 느꼈다. 죽고 싶은 마음 보다 살고 싶은 마음과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나를 향한 글을 그만 쓰고 싶어, 좀 가볍게 즐겁게 글을 쓰고 싶어 <엄마가 술 마시는 게 어때서>를 썼다. (물론 그 책 또한 나로 향하는 글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단순히 나만을 위한 글이 아닌 좀더 다른 무언가와 연결이 되고 좀더 넓은 의미의 생명과 가까워지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의 유의미한 글이 찾아올까. 아니, 찾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