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친구에게 갑자기 연락한다, 옛 은사를 찾는다, 성직자를 만난다, 갑자기 성격이 밝아진 것처럼 보인다.
자살을 앞둔 사람들의 공통적인 행동들이니 주의깊게 관찰하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한강, 한강 디 에센셜 중 단편 <파란 돌> p251
책을 읽다 잠시 멈추었다.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는 행위에 대해 쉽게 비난하곤 했다. 우울증에 대해 쉽게 말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남겨진 사람은 어쩌라는 거냐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정신력으로 이겨내지 못하고 패배한 거라고. 나는 그런 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마냥, 삶에 대한 의욕으로 충만한 사람인 마냥, 산다는 게 무슨 대단히 좋고 귀한 일이라도 되는 양, 주변 사람들에 대해 대단한 사랑을 품고 있는 양.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진 걸까. 무엇이 날 다르게 만든 걸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고집스럽게 우기던 나는 그래도 조금은 변했다. 조금은 나아진 방향으로, 조금은 더 몹쓸 방향으로.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는 좋은 사람이 되어 그런 마음이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매체들을 보면서 인식이 달라진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진짜 본심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그러니까 남들 앞에서 그런 말을 내뱉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다독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인식과는 별개로 내가 정말 우울이나 불안, 이런 마음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일까 의심이 들었다.
남들이 보는 나는 의욕적인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무언가에 꽂혀 있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암반수를 발견하고도 남도록 밑으로 밑으로 파고 들어가 이대로 꺼져버리길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길 바라기도 하는 사람이란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보는 나에게 꽂혀 내가 생각보다 많이 우울했고, 많이 불안했고, 많이 힘들었다는 걸 내 지나온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분명 순간들이 있었다. 그 첫 순간은 열 살 무렵이었다. 이대로 뛰어내려봤자 다리 하나 부러지고 말, 이층 방 창문에 걸터앉아 이 몹쓸 놈의 높이를 저주하던 순간들. 이층 집이 아니라 한 오 층 집이었다면 나는 뛰어내렸을까. 총이 등장하면 꼭 발사가 된다는 영화 법칙처럼 칼을 보면 그 칼이 어딘가로, 누구에겐가로 발사될 것 같은, 그 발사를 내가 할 거 같은 순간들. 인도와 차도라는 인위적인 선 앞에서 여기서 한 발만 넘어가면 끝이 날까 건널목 앞에 설 때 궁금해하던 순간들. 부서질 것 같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아이가 해체될까 무서웠고 왠지 그 짓을 내가 할 거 같은 기분에 휩싸였던 순간들. 운전을 하다 그대로 앞차나 벽에 박아버리면 속이 시원할 거 같은, 해방감을 느낄 거 같았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모아 본 건 최근의 일이다.
그건 우울이나 불안과 나는 거리가 멀다고 재단해 왔기 때문이었다. 살아오는 시간 속에서 그 순간들이 나를 집어삼키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힘들었고, 괴로웠던 시절의 순간들은 수긍이 갔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는 왜 여전히 그런 순간들이 존재하는 걸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행복하다고 소리 내어 말했다.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이었던 거 같다고, 별 일이 없고 가족은 화목하고 정말 작은 일로 스트레스받는다고 칭얼거리는 이런 삶이 진짜 사람이 사는 거라고 했다. 이제야 내가 사람이 된 거 같다고 했다. 그날들에서 지금까지 오는 데에 역시나 별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 사이 글을 쓰면서 괴로웠던 시절과 화해 비슷도 했다.
위에 언급한 문장들에 나는 해당하는 바가 없다. 전혀, 분명하게. 그럼에도, 그런데, 잠시라기엔 꽤나 오랜 시간을 그 문장들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또 멈춰버린 문장들.
안심이 돼. 지금 뛰어들면 이제 아무 문제 없어. 빚도, 공부도, 고향도, 후회도, 걸작도, 수치도, 마르크시즘도, 그리고 친구도, 숲도 꽃도, 이제 아무래도 좋아. 이걸 깨달았을 때, 난 저 바위 위에서 웃었지. 안심이 돼.
다자이 오사무, 만년, p166
굳이 찾아내 끄집어내 표현하고 싶지 않은 다양한 모든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안심이 된다라니.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 시도를 했던 화자의 말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게 가장 힘든 건 내 감정이라는 것. 빚도, 공부도, 고향도, 걸작도, 마르크시즘도, 친구도, 숲도 꽃도 아니다. 후회와 수치. 저 문장들에서 찾아낸 내 안의 키워드. 후회와 수치.
그러므로 다시 길을 찾는다. 나를 옭아매는 감정에서 벗어나자. 감정을 적고, 그 감정이 실제가 아님을 깨닫자. 지나간 일 붙잡고 고민하는 거 아니라고, 고민으로 해결되는 거 아니면 고민하지 말라고 쿨한 척하며 남들에게 내뱉던, 조금은 정신적으로 건강했던 시절의 말들을 내게 되돌려 주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모르게 지난 일을 떠올리며 내게 '미친년'이라고 툭 내뱉어버리는 어느샌가 습관이 되어버린 못된 짓은 그만두고.
그리고 이런 글은 그만 쓰자고 다짐해 본다. 되도록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