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머리 말리기가 영원 같이 느껴진다

by 유이경
즉 "장하다", "잘했다", "훌륭하다"라고 칭찬하는 것은 엄마가 아이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고 무의식중에 상하관계를 만들려는 걸세.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226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하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227




아이가 아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날 쳐다봤다. 아이 머리를 말려주고 있었는데 뒷머리가 잡아당겨졌나 보다. 평소엔 잘도 나오던 아팠어, 미안이란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온다. 저 표정, 엄마에게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저 표정이 말을 막는다. 하루이틀도 아닌데 왜 오늘은 말이 안 나올까. 그렇다고 모른 체했다간 괜히 별 일도 아닌 일로 감정이 오가면서 더 골치만 아파진다. 그러니 대략 미안하단 표정을 지어내어 눈을 맞추는 걸로 퉁을 친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시끄럽다.


언제까지 이런 것까지 다 맞춰줘야 돼? 이런 것까지 일일이 미안하다고 해야 돼?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는 건 내 어린 시절과 비교되어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내 아이만 할 때 엄마의 손길은 나처럼 세심하지 않았다. 머리를 말려주거나 묶어줄 때 머리가 확 잡아당겨져서 아프다고 하면 가만있으라고 오히려 혼나곤 했다. 죄지은 사람처럼 앉아서 아픔을 참던 게 생각나서 아이 머리를 만질 때 조심하고, 미안하다고 잘 말하곤 했는데 내가 만들어놓은 상황에 나만 억울하다.


혼자 열 뻗쳐하다가 문득 저 문장들이 떠올랐다. 그래, 우린 수직관계가 아니다, 수평관계다. 아이가 아니라 수평관계인 친구라고 생각해 보자. 그럼 억울할 게 없다. 당연 미안하다고 할 거다. 친구 머리 말려주다가 아프게 했음 미안하다고 바로 하지. 그런데 생각이 이어진다. 아니, 그런데 이런 친구가 어딨어, 이렇게 까다로운 친구가 어디 있냐고, 이 정도 머리 당겨졌다고 인상 확 찌푸리며 쳐다보는 친구가 어디 있냐고. 그런 친구랑은 안 본다고. 아니, 애초에 머리를 왜 말려주냐고. 아니, 이런 친구는 없다니까? 머릿속에서 혼잣말을 다다다다 쏟아붓는 와중에도 나는 아이 머리를 말려주고 있다.


마음속 갈대에 마음껏 휘둘러지다가 다시 가다듬는다. 이 책에서 분명 저 구절들을 읽을 때 아- 아- 입을 바보같이 벌리고 감탄했는데, 혼자 알고 있기 아깝다며 이 현자의 말을 함께 나눠보자고 지인들에게 설파하고 다녔는데. 글렀다. 감탄은 사라지고 반발심만 회오리친다. 아니, 행동을 좀 응? 좀 어른스럽게 해야 대등하게 대하지. 씩씩거린다. 물론 속으로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 머리를 말리고 있다.


사실 옳은 소리 구구절절하게 한 책이 문제가 아니다. 한 번씩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쉽게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문제지. 거슬리는 아이의 행동을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 소리 지르기, 화내기 등 내가 네 위라는 걸 인식시키는 방법 말이다.


예전의 많은 부모자식 관계가 그랬듯이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 역시 전형적인 수직관계였다. 그런 관계가 사람 사이를 어긋나게 한다는 걸 겪었기 때문에 나와 아이 사이는 되도록이면 수평적인 관계로 지내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헷갈린다는 거다. 아이가 버릇없는 거 아닌가, 너무 봐주고 있는 거 아닌가. 부모에게 예의 바른 태도가 열 살 무렵 아이에게 흔한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아이가 예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나의 부모처럼 아이를 눌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넌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를 세상에 나오게 한 창조주다, 이런 마인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마인드.


내가 여전히 자기 머리를 말리면서-머리 말리기 편하게 제발 좀 짧게 자르자고 해도 말 안 듣는 따님 덕에 오래 걸리는- 온갖 혼란을 겪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이는 만화책을 읽느라 바쁘다. 혼란을 잠시 내려놓고 머리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고 아이에게 묻는다. 너, 머린 언제부터 혼자 말릴 거야? 잠시 생각해 보던 아이는 12살이란다. 12살? 그럼 1년 남았나? 아니, 이제 만 나이로 바뀐다는데 그럼 몇 년이나 남은 거야? 네가 말하는 게 만 나이야, 아니야?


이제 얼마나 남았지? 끝이 나긴 하나? 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끝이 없는 것만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올 그 나이 때가 되면 막상 좀 서운하긴 하겠지. 그 나이 때가 되면 우린 어떤 관계를 거쳐 어떤 관계가 되어 있을까. 부모 자식 관계라는 게 꼬인 거 없이 마냥 사이좋긴 힘들다는 건 알지만 되도록이면 나 혼자만 수직관계냐 수평관계냐 속으로 괴로워하고, 아이 처지에선 우리 정도면 수평적이었다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도, 혹은 아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떠올리는 엄마를 우리 엄마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아이만 자랄 게 아니라 나도 더 자라야겠지. 그래서 머리 언제 다 말리지?



사진: UnsplashSam Moghadam Khams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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