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 않으면 계속할 수가 없다.
미야지 나오코, 상처를 사랑할 수 있을까 p101
글 쓰는 게 재미가 없다. 글 쓰는 게 숙제처럼 여겨져 회피하다가도 막상 쓰다 보면, 그리고 어떻게든 글의 끝마무리를 하고 나면 점점 차오르던 고양감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걔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디로 갔니.
어떻게든 써야지 싶어 함께 쓰는 모임을 신청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글 쓰는 게 재미없다.
그래도 나름 이런저런 글감은 쌓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던 때와 다르긴 하다. 하지만 쓰는 글들은 계속 제자리를 도는 느낌이고 억지로 쥐어짜는 기분이다. 그전엔 글을 쓰면 내장까진 아니더라도 식도 정도까진 내려가 쏟아내는 기분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쏟아낸 것만으로도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곤 했는데 매번 그럴 수 없단 걸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책을 덜 읽어서인가 영화나 드라마를 덜 봐서인가 자극이 없나. 쳇바퀴 같은 하루들이 글도 쳇바퀴로 만들고 있는 건가. 아니면 자격증 함 따보겠다고 시작한 공부가 은근 부담이 되어 감수성 비슷한 걸 말려버리고 있는 건가.
어제까지 붙들고 있던 글이 두 개 있었다. 어떤 글로 마무리를 할까 배부른 듯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냅다 일요일 밤, 좋아하는 밴드의 내한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시작한 중얼거림이 내려야 하는 전철역 개찰구 앞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카드는 안 찍고 앞에 서서 엄지로 토도도도독 써 내려가고 있다.
재미가 없어. 그렇다고 글을 안 쓸 수도 없고. 갑자기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가 생각난다. 글 쓰는 게 아무리 버거워도 힘들어도 쓰라고, 짐을 챙겨 들고 가까운 카페로 가라고, 어떻게든 쓰라고 했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 정신일까.
춥다. 이젠 전철역에서 나가야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은 휘영청하다. 정월대보름의 보름달이 아니어도 술집들이 즐비한 골목에 꾸며놓은 색색이 전구들로 충분히 휘영청하다. 이대로 어디 조용한 바에나 들어가 술이나 한 잔 마시고 싶다. 아니 이럴 때가 아냐, 공부해야지, 글 써야지, 애 봐야지 이런 죄책감 다 내려놓고.
아니, 다 내려놓고 이제 주머니에 손 넣고 걸어가자. 걸어가며 토독거리기엔 너무 날이 춥다. 손 넣고 걸어가면서 달님한테 소원이나 빌어야겠다.
사진: Unsplash의Michelle Philli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