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아

by 유이경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한국 속담




굳이 내 흰머리를 새치라고 말해주는 착한 미용실 원장님과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었다. 원래 미용실에선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는 과묵한-낯 가리는- 나이지만 단골 미용실 원장님 앞에선 저항감이 없다.



손님은 딸이랑 안 싸우죠?


낯을 가릴 뿐 한 성깔 하는 나를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이 질문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대화는 바로 엄마와 딸은 왜 싸울까이다.


원장님과 나에겐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나이의 딸을 키우는 비슷한 나이라는 꽤나 큰 공통점. 흰머리가 아닌 새치를 가리기 위한 뿌리 염색을 하는 시간 동안 원장님과 나는 왜 우리는 딸과 다투는지에 대해 성토를 했다.


시작은 항상 작은 것이다. 사소한 것에 둘 중 누군가 빈정이 상하고 그걸 티 내고 그거에 멀쩡했던 누군가 빈정이 상하고 말이 오고 가고 감정이 올라오고 대부분 목소리가 올라간 엄마의 다다다다로 끝나는 엄마와 딸의 다툼. 마치 신혼 초에 겪는 남편과의 다툼 같다. 남편과 맞춰나가느라 별거 아닌 거에 몇 년 날을 세우는 것처럼 자기 생각이 뚜렷해진 지 몇 년 안 된 아이와 맞춰가는 중인 걸까.


이런 다툼이 한바탕 휘몰아치다 지나가면 엄마들은 톤이 올라간 마지막 다다다다를 후회하고 아이에게 사과를 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어른인 내가, 엄마인 내가 참아야지, 잘 알아듣게 말해야지, 싸우지 말아야지. 그래놓곤 또다시 반복. 이 상황은 비단 나와 원장님만의 것이 아니다. 딸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면 열에 아홉은 이 이야기에 공감하며 열을 올리며 이 대화 주제에 참전한다.


보통 나는 왜 이럴까 자책으로 끝나는 대화가 오늘은 달랐다. 원장님은 아이를 키우면서 어릴 적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를 많이 떠올린다고 했다. 자신도 엄마와 어릴 때 다퉜나 지난날들을 떠올려보면 아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남편들이 혀를 차며 넌 애랑 친구냐, 왜 싸우냐라고 말하는 그 상황은 요즘 엄마들과 딸들과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원장님처럼 나도 어린 시절 엄마와 싸우기는커녕 내가 무얼 원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아니 못하는 아이였다. 나에게 엄마는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요즘 딸들은 어떤가.


원장님 아이처럼 내 아이도 한 번 입을 열면 한 시간은 내 귀에 끝나지 않는 말 폭격을 퍼붓는다. 학교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났는데 걔가 이런 말을 해서 기분이 나빴다는 말, 어떤 애가 발을 밟고 미안하단 말을 안 했다는 말, 집에 오는 길에 홍보물을 받았는데 거기 들어있던 사탕이 맛있었다는 말, 친구가 작게 손으로 찢은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 줬다는 말, 이따 친구랑 만날지 연락하기로 했는데 얘는 왜 전화를 안 받냐는 말, 오늘 친구들이 새로운 쎄쎄쎄를 알려줬는데 이거 해보라는 말, 끝도 없는 말. TMI란 이런 거다 몸소 보여주는 딸의 폭격을 들으며 연애 초반 내 남편도 힘들었겠구나 깨닫는다. 이 정도는 아니라도 나도 남편에게 내 하루의 모든 걸 다 공유해주고 싶었으니까.


이만큼 사랑받고 있다, 이만큼 마음이 열려있다. 알고 있다. 그래도 귀에서는 피가 난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는 이야기는 꼭 한 번씩 어긋나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자기 마음을 잘 안 받아준다고, 난 한다고 하는데 왜 그러냐고, 넌 왜 말을 그렇게 하냐고,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러냐고 누가 시작한 건지 모를 곱지 않은 말들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엄마에게 모든 걸 내보이고 불퉁거리고 다투는 일상이 제한 시간이 있는 있는 일이란 건 안다. 딸들과의 감정싸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들 모두 안다. 곧 사라질, 그땐 그리워할지도 모를 현재의 일이라고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위로가 아니다. 미래 때문에 현재의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 정녕 해결방안은 그것밖에 없는 걸까. 성장. 나도, 아이도 더 크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아이의 성장은 당연한 흐름이라고 쳐도 나는 언제 클 수 있는 걸까. 아이가 여덟 살 때나 열한 살 때나 여전히 나는 같은 자리를 맴돌며 아이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는 엄마다. 그래도 쥐콩만큼씩이라도 나아지고 있긴 한데 이게 나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아이 덕분인지 내 덕분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 앞에서의 행동 때문에 자책하는 내게 해준 남편 말처럼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단 걸 알게 되는 거 아니냐고 아이가 크면서 적응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해진다. 아이야, 미안하지만 난 이렇게 생겨먹었구나. 근데 잠깐, 남편의 말은 나를 위로하는 거였을까 멕이는 거였을까.




사진: UnsplashLewis Robe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