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는 상태, 모르겠는 상태

by 유이경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 잘하는 일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에요.


마스다 미리,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p100




역시 마스다 미리는 마스다 미리다. 다른 만화들도 좋았지만 특히 이 만화가 좋았던 건 그의 현재 이야기, 그리고 지난 이야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혜안, 이런 멋진 말은 어떻게 찾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은 어떻게 떠오르는 걸까. 누구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는 이렇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마냥 부러워하고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슬퍼하는 건 아니다. 요즘엔 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을 그다지 부러워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재의 나 자신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았다. 과거? 지난 일 따위 떠올리면 뭐 하나, 바뀌는 것도 없는데. 앞으로의 일? 미리 걱정하면 뭐 하나, 그러면 뭐가 달라지나. 현재에 충실하자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얼마 전까지의 그 마인드는 어디로 간 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다. 중년의 위기가 온 걸까. 아니, 난 내가 중년이라고 아직 인정도 못하고 있는데(그렇다고 중년이 아닌 건 아닌데도...).



앞으로 사는 날 중에 젊은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제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단 생각이 든다. 체감으로 느끼는 내 나이와 실제 내 나이의 갭에서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회에서 받아주지 않는단 생각이 들 때면 뜬금없이 지나온 과거가 아쉬워진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때 저쪽으로 갔으면 다르지 않았을까. 여태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말이 마음속에서 튀어나왔다. 실패. 어릴 적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지금 멈춰 서서 생각해 보니 나는 실패한 것만 같다. 내가 못해서 못한 일, 못해서 포기한 일, 못해서 안 한 일.


나이가 들수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지언정 오히려 뒤로 주춤주춤 안 하던 자책을 하고 있다. 이런 게 진짜 중년의 위기인가. 중년의 우울증인가. 글을 써봤자 맨날 헛소리를 내뱉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 글이 재미가 없지. 지난 글이 오랜만에 다음 메인에 나와서 조회수는 많이 나왔는데. 그래도 글 쓰는 게 그다지 재미가 없다. 불과 몇 달 전엔 안 그랬는데. 불과 몇 달 전이었던 2022년에는 안 그랬는데. 이제 겨우 2월인데. 문제는 이걸 내 일기장이 아니라 브런치에 쓰고 있다는 게 문제다. 문제야, 문제.



일요일 밤이다. 주말 중 하루는 쉬어줘야 하는데 이틀 내내 나갔고 이틀 내내 오전에 나가서 저녁까지 있었고 그런데 생리는 하고 있고 엄청 피곤한데 아침에는 나가 달리기를 하고 밤에는 술은 마시고 있고. 내일 또 오전에 나가야 하는 압박감이 있고 나는 에너지가 없는 사람인데 자꾸 일이 있고. 아이는 방학이고 여전히 우리 세 식구는 다 집에 있고 하루 세끼를 먹고 먹여야 하고. 아직은 윤정부 나이로 줄어들기 전이라 딸에게 "엄마는 사십 대 후반이야."란 정확한 워딩을 들었고 그래도 난 마라톤이 나가고 싶어 져서 봄의 마라톤에 참가 신청할 예정이고 그래봤자 5km짜리밖에 안 되고 그래도 가을엔 10km에도 나가고 싶은데 작년처럼 무릎 나갈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러면 실패한 것까지 나를 만든 거면 지금의 우울한 나를 만든 건 무얼까. 잘하는 일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고 해도 아니, 그 사람의 전부라고 한다면 내 전부는 무얼까. 내가 잘한 건 무얼까. 내가 잘하는 건 무얼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태. 지금으로선 저녁밥으로 시켜 먹은 커리가 맛있다는 것만 알겠는 상태. 꼬리를 바짝 세우고 걸어가는 저 고양이를 좀 더 사랑해 줘야겠단 건 알겠는 상태. 우리 딸이 참 귀엽단 건 알겠는 상태. 맥주가 맛있는 건 알겠는 상태. 아, 이 정도면 충분한가. 이 정도로도 충분했었는데.



사진: UnsplashDaniel Mingoo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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