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아니 방이 갖고 싶다

by 유이경

큰오빠네 집에 가면 다리까지 올릴 수 있는 1인용 소파 같은 의자가 있다.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 앞에 놓인 1인용 의자. 그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대고 누워 책을 읽고 싶다. 그때 배경음악은 LP여도 좋고, 그냥 AI 스피커에서 틀어주는 기계음이어도 좋다.


소박하게 생각해서 의자지, 솔직히 말하면 내 방이 갖고 싶다. 내 방에 서가, 그 앞에 의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방이다. 벽에 빼곡히 책장들을 두르고 앞에 내 책상과 내 의자를 놓은 내 방. 책상 위에는 내 노트북과 내 책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치워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마구 흐트러져 있고, 허리가 안 아프게 설계된 의자가 뙇. 그리고 더 욕심을 부리자면 큰오빠네 있는 그 의자도 하나. 의자는 진짜 욕심인가. 그 방에서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잠깐 졸기도 하고 잠깐, 아니 조금 길게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아무튼 내 방 말이다.


내 방이 없는 생활을 한 지 이제 십 년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내내 내 방이 있었다. 딸이 하나인 덕분에 방을 같이 써야 했던 오빠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혼자 방을 썼다. 그래선지 나는 내 공간이, 내가 혼자 있는 공간이 익숙하다. 더럽다고 누가 한마디해도 내 방인데 뭐 어쩌라고 하고 말 수 있는 나만의 공간. (그래서 딸 방이 난장판이어도 별 말을 안 했더니 아주 가관이다.)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 공간이 없어졌다. 방이 두 칸짜리일 때엔 자는 방 하나, 둘이 함께 일하는 방 하나로 두 방 모두 같이 썼고, 방이 세 칸짜리일 때엔 남는 방은 아이 방이 되었고 내가 육아를 전담하면서 자연스레(는 아니고 방 크기가 작아서) 내 책상은 일하는 방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식탁이다. 벽을 등지고 벤치에 앉아 노트북과 요즘 필요한 책들과 공책들을 식탁 한쪽에 놔두고 사용한다. 물론 식사 때면 그것들은 사라져야 한다. 자꾸 물건을 치웠다가 올렸다가 하는 것도 힘들지만 몇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있다 보니 이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정작 아이는 잘 쓰지 않는 아이 책상을 노려 보았다. 책상과 의자 높이가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훌륭하다. 그런데 점점 아이가 자기 책상을 쓰고 있는 날 발견하면 정색하기 시작한다. 쳇.


거실이 참기 힘들 정도로 소란스러우면 짐을 싸들고 안방 한쪽에 놓인 커피테이블 위에 짐을 풀고 바닥에 앉는다. 물론 오래는 있기 힘들다. 양반다리는 역시나 허리에 해롭다. 그래서 커피테이블을 치우고 거기에 내 책상을 놓으면 어떨까 남편에게 물어봤는데 거부당했다. 안방에 책상이 있는 건 이상하다며. 쳇.


그래서 다시 내 자리는 식탁 위다. 남편과 밥 먹는 시간이 맞지 않아 남편이 먼저 먹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밥을 열심히 먹는 남편 옆에 앉아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한다. 그럴 때마다 애매하고 오묘한 기분이 든다. 남편의 밥 먹는 소리를 차단하고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이어폰을 낀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응, 지금 내 옆에 앉아 남편이 저녁밥을 먹고 있다.



얼마 전 집을 보러 갔었다. 이사를 곧 해야 할 상황이라 분위기 좀 볼 겸 보고 왔는데 아뿔싸, 큰 실수를 했다. 방이 네 개인 집을 본 것이다. 그 이후로 머릿속에 방 네 개인 집이 어른거린다. 안방, 남편 방, 아이 방에 내 방도 만들 수 있는 집. 그래도 방 네 개짜리 집은 무리인데.


방 네 개는 무리이니 이사 가면 식탁과 붙어있으면 뜬금없는 그림이라도 척추와 허리를 생각한 인체, 공학, 설계 어쩌고 어려운 말들 잔뜩 붙은 의자라도 하나 들여야겠다. 1인용 리클라이너-소파인지 의자인지 그게 뭐였는지 이름을 찾아보았다-는 머릿속에서 지우는 게 속 편할 거 같다.



사진: UnsplashHuy Nguy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