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필립 로스, 에브리맨, p188
눈을 감으면 나는 죽는다. 눈꺼풀을 덮고 시야가 컴컴해지고 숨을 쉰다는 자각을 잊어버리면 죽음으로 빠져들 시간이다. 태어나는 건 죽는 것만큼 힘들 게 틀림없다. 핸드폰 알람이 아침을 알리면, 아무것도 없는 어둠만은 아니었던 잠에서 헤어 나오기 싫어 가끔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큰소리로 울고 싶어진다. 아침. 죽음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다.
인간은 잠을 통해 죽음을 선험해 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죽음은 익숙해질 재질의 것이 아닌지 잠을 통해서 오히려 태어남, 시작이 더 익숙해진다. 매번 그렇게 깨어나는 게 싫으면서도 결국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구성해 낸다.
좀 전에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을 읽었다. 보통 사람이 겪는 인생의 굴곡과 육체의 쇠락을 담담하게 표현해 낸 책이다. 그래, 이런 책을 좀 전에 읽어서다. 결국 인간이 가는 길, 죽음에 대한 책을 방금 읽고 '시작'이란 소재로 글을 쓰자니 이런 걸 거다. 그렇다고 생각하자. 아님 말고.
점점 인간의 끝에 대해 진지해진다. 그저 갑자기 한순간에 오는 것이 아님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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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고양이가 방금 '7' 하나와 '4' 잔뜩과 '3' 조금을 모니터에 흩뿌려놓고 튀었다. 뭐야, 너, 하필 왜 '4'를 이렇게 많이 밟아놔!
흠흠, 아무튼 육체의 노화를 겪고 있다 보니 단순히 '늙는다'는 것이 단어로만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는 당연하게 윤회를 믿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윤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재밌고 더 상상할 거리도 많고, 그리고 헤어져야만 했던, 앞으로 헤어질 인연들이 조금은 덜 쓸쓸해질 것 같아서겠지. 다시 태어나는 게 정말 존재한다면 죽음은 시작이기도 하겠다. 물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해도 내 육체가 다른 에너지로 변화해 그 무엇으로든 존재할 테니, 그것 또한 시작일 수도 있겠다. 내가 자각하든 아니든.
이제 슬슬 동력이 떨어지는데... 고양아, 얼른 다시 와서 키보드 좀 눌러주지 않으련? 꼭 필요할 땐 옆으로 안 온다. 이렇게 쓸데없는 녀석을 왜 사랑하는지. 우선 오늘은 일찍 눈꺼풀을 덮어 죽음을 맞이하자. 그리고 내일도 이 녀석을 사랑하는지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