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냥 남자선배였던 그 남자가 좀 다르게 느껴졌던 건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선배는 자아를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분리해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도 그러하다고. 그 책을 읽고 나처럼 동질감을 느낀 사람을 처음 발견했다.
그래서였을 거다. 나는 남자선배를 지나 남자친구가 된 그에게서 지속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나와 이렇게 비슷하구나.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가 구분되어 있는 사람인만큼 사람들 앞에서의 그와 내 앞에서의 그는 달랐고, 진짜 그를 아는 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도 그 생각을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그래서 더 친밀감을 느꼈다.
남자친구를 지나 남편이 된 그가 어느 날 내게 한 말은 그렇게 느껴온 내겐 일종의 배신이었다. '나와 이렇게 다르구나.' 연애 기간 내내 그가 내게 느낀 감정이란다. 자기는 내가 자신과 달라서 좋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나와 같아서 좋았는데!! 십 년이 넘는 연애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서 무얼 본 걸까. 물론 다른 점은 당연히 있다.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방점은 우리의 비슷하고 닮은 점이었고, 남편의 방점은 우리의 확연하게 다른 점이었겠지.
이제 배신은 없다. 십 년이 넘는 연애 기간 동안 충분히 동질감을 느꼈다면 이제 십 년이 넘는 결혼 기간 동안 느껴야 할 건 남편의 감정이겠지. '나와 이렇게 다르구나.' 이제는 나도 그에게 동질감보다는 나와 달라도 참 다른 인간이란 생각이 고착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아니, 그런데.
한창 유행했던 MBTI를 인터넷에서 해보았다. 둘이 딱 하나만 다른 유형으로 나왔다. 둘 다 그 유형이 딱 맞아 보였다. 특히 남편이 나온 유형의 특성은 그냥 남편의 성격 그대로 옮겨놓은 정도였다. "진짜 딱 당신이네!! 당신 보고 썼냐, 이거??" 어느 유형에나 나오는 단점 비스무리한 걸 이때다 싶게 큰 소리로 읽어대며 돌려까대며 한참 깔깔대며 신나 했다. 그러고 몇 달 뒤 인터넷이 아닌 전문가가 해주는 MBTI 검사를 하게 되었다. 뭐야. 이게 뭐야. 인터넷에서 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나, 왜 남편하고 똑같은 유형이냐.
내 유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읽었을 땐 몰랐던 특성들을 다시 읽어보니 나, 맞았다. 헐, 대박, 오노, 쉣, 염병. 온갖 추임새를 내며 생각했다.
'뭐야, 그럼 결국 내 말이 맞는 거였네. 우리 비슷한 인간 맞네.'
근데 왜 자꾸 헐, 대박, 오노, 쉣, 염병이란 말이 계속 맴도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