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르게 나는 내가 커피에 빠진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덜컹거리는 버스로 여섯 시간, 드디어 도착한 작은 바닷가 관광지 중 한 리조트에 짐을 풀고 나오니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달려온 이름 모를 동지들은 모두 반나절 투어를 하러 떠났다. 거리에도, 리조트에도, 리조트에서 바라보이는 바닷가에도 인적이 끊겼다. 어슬렁어슬렁 리조트 안을 돌아다니다 야외 식당 쪽을 기웃거렸더니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다가 괜히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부탁했다. 그것도 뜨거운 커피로.
금방 뜨거운 커피 한 잔이 손에 쥐어졌다. 보통 우리나라에선 좀 비싼 카페에서 '차' 종류를 시켜야 나오는 예쁜 찻잔에 갈색 빛을 띤 시커먼 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었다. 소중히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많은 테이블 중 하나를 골라 앉았다. 수평선. 리조트 수영장의 작은 수평선, 그 수평선 너머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펼쳐진 바닷가, 그 바닷가 끝에 보이는 큰 수평선. 그 수평선들을 바라보면서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한 모금씩 마셨다.
이 순간을 위해 내가 여기를 여섯 시간 동안 달려왔구나. 완벽한 순간이었다. 쿨하게 포기했지만 알고 보니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자연의 경이를 볼 수 있었던 반나절 투어가 아쉽지 않았다. 돌이켜보아도 그렇다. 자연의 경이 보다 내겐 그 커피가 더 경이로웠다. 완벽한 커피였다. 커피에 대해 1도 모르던 시절의 내가 마셔도 그랬다.
그 완벽함을 재현할 순 없겠지만 그 이후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뜨거운 커피,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뜨거워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시사철 마신다. 잠시라도 뜨거운 커피에서 올라오는 향을 맡으며 그때의 완벽한 고요함, 완벽한 외로움, 완벽한 평화를 떠올린다. 죽기 직전 그것을 조금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내 죽음에 그런 고요함과 외로움, 평화를 데려갈 수 있다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예쁜 찻잔에 담아 한 잔 마시고 싶다.
사진: Unsplash의Clay B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