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밤은 포기 못하지

by 유이경

토요일 오후, 아이가 들러붙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놀러 온 친구가 저녁 먹고 늦게까지 놀다 갈 줄 알았는데 저녁 전에 가야 한단 소리를 들어서였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 확인해 보니 저녁에 외출해야 해서 아이를 데리러 올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을 전해주니 친구는 안 나가는 거라고, 어른들만 나가는 거니 엄마가 이따가 늦게 집에 데려다주면 되지 않냐고 한다. 잠시 생각의 회로를 돌려보고 안 된다고 말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 집 어른들은 저녁에 술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러 오지 못하는 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나도 당연히 토요일 저녁이니 술약속이 있었다. 누구랑? 나랑! 보통은 남편과의 술약속이지만 남편이 마시지 않는 날에는 나와의 술약속이 있었다. 가장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안주를 앞에 두고 마시는 일주일 중 하루, 토요일 저녁 아닌가. (토요일 오전에 아이와 나가야 하는 일정이 생긴 이후로 금요일은 그다지 불금이 되지 못해 일주일의 가장 불타는 날은 토요일이 되었다.) 아이 친구네 집에 늦은 밤에 데려다주려면 차를 타고 가야 했다. 그러면? 그러면 나의 토요일은? 밤 열 시까지 술을 마시지 못하고 운전을 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와야... 하나? 왜? 도대체 왜? 왜 내가 그 집의 술 시간을 위해 내 술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가. 잠시잠깐동안 돌린 회로 속에서 슬금슬금 화가 올라오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계속 왜 안 되냐고 질문을 가장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대놓고 속마음을 말할 수 없으니 빙글빙글 돌려 안 된다고 말했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누가 이기나 서로 떼를 쓰듯 그렇게 해줘, 안 돼, 엄마~, 안 돼를 반복하다가 딱 잘라 말했다. 안 된다고, 다음에 오래 놀자고 하자고, 그 집에서도 안 된다고 한 걸 억지로 늘리면 되겠냐고, 엄마랑 이러는 시간에 친구랑 조금이라도 더 놀겠다고, 그랬더니 그제야 아이가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렇게 좋게 포장했지만 내 속마음은 딱 이거였다. 난 내 술시간, 포기 못해, 딸아. 뭐 큰일도 아니고 그런 일 때문에 포기할 순 없어. 미안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내 걸 포기하면서 아이를 키우지는 못하는 사람이야. 네게 네 시간이 소중한 만큼 내겐 내 시간도 소중해. 더구나 토요일 저녁? 그건 포기 안 되지.


언제 엄마랑 실랑이를 했냐는 듯 다행히 아이 기분은 풀어졌고, 나머지 시간을 친구와 재미나게 보내고, 토요일 저녁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가족 모두 좋아하는 제주 흑돼지집에 가서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삼겹살과 고사리나물을 먹으며, 남편과 나는 삼겹살과 새로 나온 '새로' 소주를 먹으며 각자, 또 함께 즐거워졌다.


이렇게 모두 좋아하는 나들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가 나를 위해 포기하고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외출 자체가 별로 안 내킬 때, 음식 메뉴가 별로 마음에 안 들 때, 떼를 쓰는 엄마를 위해 아이는 포기하고 내 말에 따라준다. 반대로 나나 남편도 아이가 가고 싶다는 곳에 내키지 않아도 웬만하면 함께 간다. 뭐, 그렇게 사는 거지. 그렇게 배워가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서로 양보하고 포기도 하고 그리고 또 포기하지 않기도 하고 내 걸 주장하기도 하고,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알아가기도 하고, 서로 맞춰가기도 하고. 아이에게 성질내고 술 시간 번 거 이렇게 좋게 포장하면서 끝-. 하, 슬프다. 토요일이 아직도 6일이나 남았다니. 토요일이 불과 어제였단 걸 나는 이제 모른다.



사진: UnsplashVernon Raineil Cenz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