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시선'이란 키워드로 글을 써보려고 하니 떠오르는 게 '심시선' 밖에 없다. 이 얼마나 단선적인 인간인가.
'심시선'은 한창 인기였던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 속 등장인물이다. 당연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로의 '시선'일 줄 알았는데 등장인물 이름이라니. 꽤나 신박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책을 읽을수록 그 시선이 이 시선이 맞기도 한, 제목의 이중성을 발견하고 즐거웠다.
책의 내용은 가족들이 할머니 '심시선' 여사의 제사를 하와이에서 각자 '심시선' 여사에게 바치고 싶은 무언가를 가져오기로 하면서 펼쳐지는 각자의 '시선'을 담은 이야기다. 그러면서 '심시선' 여사의
아니, 아니. 그 책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책 리뷰도 아니고, 왜 갑자기 책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거냐고. '시선'이라는 키워드에 단순히 그 책을 떠올렸을 뿐이었는데.
실은 이렇다. '시선'이란 단어에서 내가 떠올린 건 그동안 많이 써왔던 글들 뿐이었다. 여성으로서의 시선, 여성이기에 받는 시선, 엄마로서의 시선, 엄마이기에 받는 시선. 써도 써도 충분하지 않을, 아직 이 사회에선 한참을 더 해도 될 이야기지만 나는 좀 쉬어야 할 때. 그래서 그 '시선'을 외면하고 싶어 대체해 보고자 떠들어보려고 한 게 소설 <시선으로부터>다. 그런데 아뿔싸. 이 소설 역시 여성과 엄마와 딸, 이런 여성 서사들이 잔뜩 있는 책이다. 도망칠 수가 없는 건가.
노트북 키보드 왼쪽에 'Tab'과 'Caption' 등등 위에 몸을 드리우고 타자를 치고 있는 내 왼쪽 손과 팔에 엉덩이와 꼬리를 대고 있는 이 뚱냥이, 고양이의 시선은 어떨까. 아니, 아니, 고양이 이야기도 너무 우려먹었어. 고양이 안 키우면 글을 쓰지 못할 지경이야.
그런데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이 자꾸 흐려진다. 이제 밤 12시가 갓 넘었을 뿐인데 요즘 왜 이리 일찍도 졸린지. 어서 자라고 시선을 가리는 눈꺼풀. 그래, 유 윈이다. 시선은 눈꺼풀이 쌩쌩할 때에나 살아있다. 나는 그렇다.
사진: Unsplash의Robert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