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없는 평온한 상태에서 보일 수 있으며, 어린 시절 실내 생활을 해온 반려묘에게 자주 보이는 행동이다.
순이는 스트리트 출신으로, 만 1세 정도에 우리 집으로 왔다. 고양이 만 1세라는 건 이미 성묘라는 거다. 일례로 우리가 순이를 발견했을 당시 순이는 임신 중이었다. 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지 않은 고양이가 내게 그렇게 혀를 내놓고 메롱해대는 건 그만큼 나를 믿고 사랑했단 이야기인가. 괜스레 저 짧은 문장에서 코가 시큰해지는 기분이다. (물론 진짜 시큰해지지는 않았다.)
이빨 관련 질환이 나타난 경우에도 보일 수 있는 행동이다. 치주 질환으로 발치를 했다거나 이빨이 빠져 그 사이로 혀가 내려오는 등의 상황이 있다.
여기서 잠깐, 시큰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그 기분이 싹 사라졌다. 순이는 발치도 했고 이빨이 빠지기도 했다. 스트리트 생활하면서 얻은 병이기도 했고, 우리가 잘 관리를 못해서이기도 했다.
이렇게 그다지 반기고 싶지 않은 내용을 발견하면 외면하고픈 생각이 든다. 그냥 순이는 태어나길 내 옆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나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았던 거라고, 첫 번째 이유로만 믿고 싶다.
길에서 격동의 1년(길에서 불의의, 혹은 악의의 사고를 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던)을 살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산 이후로 순이는 내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대수술을 끝내고 옆에 붙어 병간호를 해주고 사는 내내 밥과 화장실을 챙기던 남편도 아니고, 태어난 이후로 언제나 안달내며 사랑해주고 싶어 상시 대기하던 아이도 아니고, 놀아달라고 관심 좀 가져달라고 쫓아다니던 콩이도 아니고, 내게만. 나는 해주는 것도 없이 그저 사랑하는 마음만 있었을 뿐인데.
순이는 전형적인 고양이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개냥이의 표본이어서 평소에 강아지라고 부르는 고양이 2호 콩이와는 딴판이었다. 도도하고, 고집 있고, 밀당 잘하고, 낯가리고, 똘똘하고, 아름다운 고양이.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던 나의 고양이. 정말 '나의' 고양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나의', '나만의' 고양이. 그러다 보니 주로 내게 보여줬던 메롱에는 사실 두 번째 이유가 있었던 거라고 해도 첫 번째 이유도 분명 있었을 거라고 바라게 된다.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순이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형으로 쓰게 된 것이. 하지만 내 핸드폰 배경화면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아이.
핸드폰 사진을 보면 순이의 털이 만지고 싶다. 짧고 굵고 힘 있는 털들이 한 방향으로 누워있을 때 어찌나 매끈하고 보드랍던지. 그 털들이 떨어져 내 옷에 박혀 있을 땐 그다지 보드랍진 않았는데. 이제 내게 더 이상 그 털을 내어주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순이는 나의, 나만의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