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그 언젠가 발견될 그 복숭아

by 유이경



요즘 복숭아 철이란다. 우리 집은 복숭아를 먹지 않는다. 아니, 과일 자체를 잘 먹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그나마 과일을 잘 먹는 사람은 아이 하나인데, 그나마 아이도 위가 작아도 너~무 작고 입이 짧아도 너~무 짧아서 사과 하나 먹으려면 이삼일이 걸린다. 그래서 항상 소량으로 파는 과일만 사려고 노력한다.


처음부터 과일을 잘 먹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릴 땐 꽤나 먹었다. 점심 먹으면 당연히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저녁을 먹어도 당연히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 집, 그런 집에서 컸으니 말이다. 여름이면 수박 한 통씩 순식간에 없어지고, 겨울이면 귤 한 박스를 며칠 만에 먹어치우는 집. 친정은 제철 과일이라 불리는 과일은 모두 사다 먹는 집이었다.


친정은 여전하다. 지금도 가면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창고방 곳곳에 종류별 과일이 박스채로 포진해 있다. 점심을 먹으면 후식으로 몇 가지 과일을 내놓고 집에 간다고 나서면 손에 그 몇 가지 과일을 한가득 들려준다. 친정에 다녀와 냉장고 앞에서 짐을 풀면 마치 과일가게를 털어온 것 같다. 과일들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다시 위가 너~무 작고 입이 너~무 짧은 아이 혼자 먹다가 결국 썩어버린다.


과일이 썩는 게 아까워 매번 우리 가족은 그렇게 과일을 많이 먹지 않는다고 조금만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세상을 모두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아버지 귀에는 도대체 들리지 않는 이야기다. 어떻게 과일을 한 번에 몇 알을 못 먹지? 어떻게 과일을 썩을 때까지 놔둘 수가 있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여전히 점심 후에도, 저녁 후에도 과일을, 그것도 앉은자리에서 사과 두 개 정도는 뚝딱 먹는 사람이니까. 그런 아버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아버지에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용납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의 항변은 언제나 무시된다. 조금만 달라는 그 별거 아닌 내 요구는 결국 아버지의 윽박지름과 화로 끝나버리고 나는 또다시 집에 돌아와 냉장고 앞에 과일 박스들을 내려놓고 망연하게 주저앉는다.


혹자는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부를 거다. 나는 소통 불가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가 닿지 않는 소통의 단절. 교신 불가.


제철이라고 여기저기서 광고하는 복숭아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고, 아이는 아버지의 알레르기 인자를 물려받아 조심시키고 있고, 나는 혼자 먹기 위해 복숭아를 깎을 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이번에도 손에 복숭아를 들려주었다.


복숭아 털을 보기만 해도 오소소 피부에 뭐가 올라오는 것 같다는 남편이 냉장고에서 복숭아를 보고 놀라면 안 되니 우선 까만 봉지에 싸서 냉장고 맨 아래칸에 꽁꽁 숨겨놓는다. 저러다 저기 숨겨놓았다는 걸 나도 까먹고 그대로 잊힐지도 모르지만. 깊고도 넓은 냉장고 세계 속에서 까만 봉지를 찾아낼 때쯤이면 다른 과일 박스가 냉장고 앞에 대기 중일 거다. 반복되는 이야기 뒤에는 또다시 반복될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 아버지의 안테나가 복구되거나 우리 가족의 과일 먹는 양이 기적적으로 늘어나기 전까진.



사진: UnsplashLuAnn H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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