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떨어졌다

남의 고통을 대하는 자세

by 유이경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서 일어난 일이라 한다. 나는 그 시각에 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 와 아이 친구 엄마와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앰뷸런스에 경찰차에 난리가 났었다는데 우리 동까지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가 거의 매일 지나다니는 상가 주차장으로 이십층에 가까운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사십 대의 가정주부, 아이가 둘 있다고 한다. 바로 그 앞에서 정육점을 하는 사장님이 보고 심하게 충격을 받았고 경비원분들이 그 피를 다 닦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 아파트에서 일어났다니 기분이 묘했고 한편으론 무서웠다. 항상 다니는 상가로 가는 길에 바로 그 주차장이 보인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 다른 길로 돌아갔다.






어제 처음 들은 소식에 이어 오늘은 다른 소식이 추가되었다. 집안의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아이들은 아직 학생이라고. 그리고 내가 다니는 상가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 다닌단다. 흠칫 놀라 우리 헬스장에 다니는 아주머니들을 떠올린다. 아이가 아직 미성년일 젊은 아주머니가 누구일까, 갑자기 떠오른 얼굴이 있다. 어제 헬스장에 안 나간 걸 순간적으로 후회했다.


오늘 헬스장에 갔다가 그 얼굴을 떡하니 마주쳤다. 갑자기 현타가 온다. 미안했다. 괜한 사람을 가지고 험한 상상을 한 나를 나무란다. 그리고 어제 헬스장을 나가지 않은 걸 후회한 나를 후회한다.






그 집에서는 앞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고통일 것임을 알면서도 얄팍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나에겐 그저 자극적인 소재일 뿐인 사건이었다. 왜일까, 왜 그런 걸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사람들은, 나는 당사자들의 마음을 둘째치고 남들에게 이야기할 소재를 찾는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어머..."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말을 흐리며 충격받은 표정을 연기했다. 남의 고통은 남의 고통일 뿐인 나이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언가 비극적인 사건을 들으면 나름 연마한 충격받은 표정, 연민의 표정을 연기한다. 나의 표정이 충분히 남을 생각하는 표정으로 비쳤을까. 내가 몇 마디 물어보는 그 말들이 호기심이 아닌 걱정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걸 걱정한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해주니 남편이 생존 여부를 묻는다. 그걸 묻지 못했다. 차마 남아있는 약간의 주저함, 죄책감이 남의 죽음마저 호기심으로 물어서는 안 된다고 붙잡았다.



나의 얄팍함에게 묻는다. 남의 고통을 가십거리로 만들려는 네게 네 고통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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