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속 이상순의 행동은 대체로 내 남편과 비슷했다. 이상순, 남편들의 공동의 적이 된 바로 그 남자 말이다. 이상순처럼 남편도 불을 피우고 고기 굽는 것도 이것저것 만들고 고치는 것도 잘한다. 남들 편하라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도 닮았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인가. 남편 모습 보듯 흐뭇해하며 보고 있다가 아내에게 다정다감한 말을 하며 챙겨주는 걸 보고 마음이 퉁명스러워졌다. 남편과 이상순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 다른 점이 있다. 이상순을 적으로 둔 남편들의 아내들이 반해버린 점은 바로 그 부분에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한 끝이, 너무나도 치명적인 한 끝이 남편과 달랐다.
십 년 넘게 연애하면서 몰랐을 리 없다. 그래도 연애할 때에는 그러려니가 되었다. 뭐 표현하지 않아도 나를 끔찍이도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긴 시간 동안 남편과 만나면서 여러 시기를 거쳤다. 남편이 나를 더 좋아하는 시기도, 내가 남편을 더 좋아하는 시기도, 그냥 이유 없이 싸우는 시기도, 싸움은 없지만 지루한 시기도, 다시 설레는 시기도, 모든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여도 될 것 같은 시기를 거쳐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살아가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사이 그 긴 세월들이 무상해졌다. 그 무섭다는 연애 6년 차도 겪어냈건만 그런 시간이 정말 있기나 했나 싶게 과거와 현재의 나는 다른 인간이라는 듯, 기억이 끊어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들과 단절된 채로 우리는 그저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된 듯했다.
얼마 전 남자가 새우 껍질을 까준다면 그건 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래도 상관없이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흐뭇해지는, 희미해지는 연애의 기억 중 그래도 하나 건져 올릴 일이 있기 때문이다.
거의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우리는 뭣도 모르고 겁도 없이 생새우 회를 시켰다. 오로지 내가 일본에 갔을 때 먹어본 생새우초밥이 정말 너무 뭣하게 맛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 놓고 펄쩍펄쩍 날뛰는 새우 한 소쿠리를 들고 와 우리에게 “이거 먹을 줄 알아?”라고 물어보는 아주머니 앞에서 얼어붙었다. 소심하게 몰라요, 하는 우리 앞에서 아주머니는 별 거 아니라는 듯 펄떡거리는 새우를 누르고 순식간에 껍질을 벗겨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평소 새우구이 껍질 벗기듯 하던 아주머니의 손놀림만 믿고 같이 갔던 후배가 도전을 외쳤다가 생각보다 완강히 버티는 새우 힘에 놀래 소리를 꽥 지르며 바로 포기해 버렸다. 나도 새우 하나를 잡고 씨름을 해댔다. 얘는 살겠다고, 나는 먹겠다고. 쉽게 눌러서 없앨 수 있는 본능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먹어야 하나 아득해지는 순간, 남(자친구였던) 편이 나섰다. 아주머니 같은 능수능란할 수는 없었으나 용감도 무쌍하게 말없이 새우를 꽉 붙들고 앉아 하나씩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남편은 새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구운 새우를 먹을 때에는 귀찮다고 껍질을 벗기지 않는 사람이다. 생새우는?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앞에 앉아 묵묵히 껍질을 까서 나와 후배에게 먹으라고 (사알짝 내 접시에 좀 더 넘치게) 앞접시에 놔주었다. 그런 남편에게 감동하기도 잠깐, 나와 후배는 아주 그냥 씹는 맛이 탱글탱글하다며 좀 전까지도 살생이니 뭐니 고민하던 마음은 후딱 내던지고 맛나게 먹어댔다.
그러고 보니 그날만이 아니었다. 대하 철이 되면 새우에 환장하는 나를 위해 섬으로 여행을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도 그랬다. 회색빛으로 불투명했던 새우가 빨갛게 오동통해지면 남편은 새우를 꺼내 자기 손가락 끝이 빨개지는지도 모르고 껍질을 벗겼다. 정작 자기는 껍질을 까지 않은 새우를 그냥 먹었다. 그리고 자기는 이게 맛있다며 남은 새우 대가리를 냄비에 다시 넣어 좀 더 바삭하게 구워 먹었다.
그랬던 남편의 마음을 그새 잊어버리고 나는 또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함께 나오는 예능을 보면서 감탄을 해댔다. 둘이 손을 다정히도 잡고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이상순 눈에서 꿀 떨어지네. 둘이 진~짜 사이좋지 않냐? 대단해~” 했다. 내 말을 못 들었나 못 들은 척을 하나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던 남편이 잠시 후에 이야기한다. “야, 나도 저 때에는 저랬어. 우리 십 년 때쯤 생각해봐. 둘은 십 년도 안되었잖아.” 잠시의 침묵 사이 저 부부가 연애까지 몇 년이나 되었나 찾아보고 있었단다. 참나. 어이가 없으면서도 남편 말에 희뿌여진 기억을 박차고 몇 개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내 뒤에 찰싹 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늦은 밤 집에 데려다 줄 때면 손에 땀이 나서 한 번씩 바지에 문지르면서도 손을 놓지 않던,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시식 음식을 내 입에 먼저 넣어주던. 결혼하고 나서도 한참을 그랬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의 역할이 연인, 부부가 아닌 아이의 엄마와 아빠로 변하면서부터 우리가 변한 것이었는데. 새카맣게 까먹고 남들 모습에 부러워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남자가 새우 껍질을 까준다면 그건 당신을 사랑하는 거라는 그 말을 듣고 얼마 안 있어 새우구이를 했다. 절대 낚시를 위한 메뉴가 아니었다. 집에 냉동새우가 있어서 너무 오래되면 안 되니까... 아무튼 새우를 구울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이용해 잔뜩 구워냈다. 새우를 구워내고 다른 반찬들을 챙기는 동안 남편은 묵묵히 식탁에 앉아 아직 뜨거울 새우를 붙잡고 껍질을 까고 있었다. 다 차려진 식탁에 아이를 불러 앉혔다. 남편은 자신의 입에는 넣지도 않고 아직도 남은 새우를 마저 까고 있다. 그러면서 까놓은 새우 반은 내 접시에, 반은 아이 접시에 옮겨 담아준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이 툭 던져졌다.
너 나 사랑하냐?
새우를 까다가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표정은 ‘뭔 개소리야’하고 있지만 나는 안다. 맛있는 새우구이를 하나 입에 넣고, 쌓여있는 새우 껍질 속을 뒤져 새우 대가리를 모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긴 수염을 휘날리며 까맣게 익어버린 눈을 가진 새우 대가리들을 오븐 속에 잔뜩 밀어 넣어 바삭하게 바삭하게 구워낸다. “아냐, 안 구워도 돼.” 손사래를 치는 남편 손끝이 빨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