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너 그러다 혼난다

by 유이경

잠결에 등을 긁었다. 한두 번 긁고 등에서 손을 빼려는데 금세 간지러워져 다시 열심히 긁었다. 얌전히 등을 긁어서는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이 몰려왔다. 평소에 잠깐 간지러워 긁는 것과 느낌이 달랐다. 피부 바로 아래에 스멀스멀 무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전신을 훑었다. 그 무엇을 뜯어내기 위해, 뜯어내 지지 않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온몸을 한참 비비 꼬며 긁어댄 후에야 그 느낌이 지워졌다. 그 과정에 잠이 홀딱 깼다. 나의 소중한 잠을 깨워버린 등에게, 등 속의 무엇에게 나는 새벽 내내 화가 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몇 년 전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등이 간지러워 잠을 깬다고. 말 끝에 “그렇지 않냐?”를 붙였지만 나도 다른 친구들도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이 늙어간다는 것과 그래서 영양제가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다.


더불어 목욕탕이 생각났다. 아주머니들이 왜 그리 바닥을 미끄덩하게 만들면서 오일이며 로션이며 온갖 것을 몸에 발랐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몸이 너무 간지러우니까, 너무 건조하니까, 너무 못 견디겠으니까 그렇게 했던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일이 내 일이 되는 것인가 보다. 사진을 찍지 않으려 했던 엄마의 행동을 내가 하고 있다. 늙은 내 얼굴을 사진으로 확인하는 것이 싫어서, 사진이 안 받는다고 이상하게 나온다고 핑계를 대는 모습도, 그렇게 거부하다 하나 찍힌 사진을 몇 년 후에 보고는 이때 젊었네하는 모습까지 엄마와 똑같다.


염색을 지긋지긋해하던 엄마 마음도 살짝 아는 수준이 되었다. 옆머리 안쪽에 알뜰히도 숨겨져 있는 내 흰머리들은 발견하는 사람들마다 깜짝 놀랄 정도의 양이 되었다. 분명 아직은 목적이 멋 내기인 염색을 하면 덩달아 흰머리가 눈앞에 사라져서 기분이 좋다. 그러면 무엇하나. 한두 달이면 또 열심히 흰머리들이 나타난다. 뿌리 염색의 목적이 살살 바뀌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거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다가 책을 덮고 티브이를 틀면 티브이에 나오는 자막이 어릿어릿 보이지 않았다. 눈에 온 힘을 주고 가늘게도 떠봤다가 한쪽 눈을 감아도 봤다가 한다. 병원에 간 김에 물어보니 눈이 늙어가는 거란다. 그렇지, 몸 곳곳이 공평하게 늙어가야지.


아직은 노화를 겪는 핏덩이라 그런지 다른 감정보다 신기함이 더 크다. 아이에게 어른의 몸이 언제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 설명하다 보니 잊고 있던 청소년 시기가 생각났다. 몸이 변하면서 겪었던 아픔과 당혹이 떠올랐다. 그때가 참 힘든 때였구나, 대견한 때였구나. 지금의 청소년들이 달라 보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두 번째 몸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와는 또 다른 몸이 되겠지. 이번에는 내가 또 어떻게 달라질까. 젊음에 대한 아련한 미련도 크지만 우선은 신기함으로 시나브로 변해있을 나를 환영하려고 한다. 다만 너무 아프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등처럼 너무 화나게는 안 했으면 좋겠다. (자꾸 그러면 효자손으로 혼내준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책을 조금 더 내 눈으로 오래 봤으면 하는 것이다. 돋보기를 안 들고 왔다는 이유로 책을 읽지 못하는 날이 조금 늦게 왔으면 좋겠다. 엄마가 책을 읽으면 어지럽다고, 눈이 힘들다고, 그래서 좋아하던 책을 내려놓게 된 그 날이 내게는 조금 늦게 왔으면 좋겠다. 매일 눈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만이 유일한 노력이지만 과한 욕심일지라도 바란다.

등, 너 효자손한테 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