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을 만나려면 그들이 우리 집으로 와야 했다. 아이가 아기일 때는 그랬다. 놀기 좋은 동네에 살 때를 제외하고 집에서 굳이 만난 적은 없는데. 집으로 와도 함께 근처에 갈 만한 좋은 식당이나 술집을 가지 않았다. 우리 집 바로 코앞에 있는 전국에 백 스물두 개도 넘을 것 같은 “홍콩반점”에 전화를 걸었다. 아니면 할머니가 열심히 만든, 정말 전국에 백 스물두 개까지는 아니겠지만 꽤나 많이 분포되어 있는 보쌈집에 전화를 걸었다.
나란 여자, 맛에 민감한 여자. 아니,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여자. 한 끼 한 끼를 소중하게. “인생에 이것보다 뭣이 중혀!”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메뉴 선정에 매우 고심한다. 그런 여자가 매번 남이 만든 음식을 고르는데 메뉴가 꼴랑 두 개로 줄어들다니. 불과 몇 년 전이라고 그때는 우리가 배달이 그렇게 중요한 민족인지 모를 때였으니까. 배달되는 메뉴는 몇 개 안 되는 시절이었으니까. 하필 그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내 탓이지.
나름 대중교통의 요지 비슷한 곳에 살다 보니 집 근처에는 식당이며 술집이며 많이도 있었다. 여름철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이십몇 층 아래에 있는 호프집의 치킨 냄새가 포슬포슬 잘도 올라왔다. 참 괴로운 밤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참 옛날부터 치킨은 배달이 잘되었어. 흐뭇해.)
밤이면 반짝반짝 빛나는 영롱한 가게의 조명들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가게들 사이에 있는 편의점에서 막 만 원에 네 개, 세계맥주를 종류별로 집어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대로 저 안에 왜 못 들어가는 거지? 이런 날이 올 줄 임신한 십 개월 동안, 수유하는 십이 개월 동안 정말 몰랐다. 임신과 수유가 끝나면 모든 생활이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유흥과는 바이 바이 해야 한다는 것. 생각보다 그 세월이 길고 길어진다는 것. 그걸 나 같은 술꾼이 모르고 냅다 아이가 갖고 싶다며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뭐 알았다고 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대도 마음의 준비는 다르지 않았을까 헛되게 되돌아본다.
동네 탐험은 내 취미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골목골목마다 어떤 집이 있는지 어떤 가게가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알았다. 거기에 돈 쓰는 재미까지 알아버린 후부터는 집 보다 가게에 관심이 갔다. 그중 진짜 들어가는 가게는 죄다 먹는 가게였지만 말이다. 집 반경 1km 내에 있는 식당들과 술집들을 죄다 파악하는 것으로 동네 탐험은 취미를 넘어 특기가 되었다. 집 근처에 지인이 놀러 오면 지역 상인회에서 나온 사람처럼 골목을 누비며 저 가게는 주력 음식이 무엇이며 맛은 어떤지, 분위기는 어떤지 소상하게 읊었다. 그렇게 지인이 내 가이드에 맞춰 1차, 2차, 3차를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랬던 내가 그래도 동네 탐험에 나서곤 했다. 아이가 아기일 때 살던 동네는 혼잡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골목골목이 많은 동네였다. 길게 몇 블록이나 이어진 주요한 길은 음식을 파는 가게들로 채워져 있었다. 종목도 다양하다. 백반집, 일식집, 고깃집, 해장국집, 호프집, 치킨집, 이자카야, 순댓국집 등등. 내가 아는 곳은 없다. 주머니 안에 분명 돈도 있는데. 한낮에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면서 먹지 못할 감을 애달프게 쳐다본다. 가게들도 나를 쳐다본다. 이제는 자기 손님이 아닌 낯선 아이 엄마를 바라본다. 예전과는 다른 시간에 다른 일행과 걷고 있는 나를 몰라본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고 나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지만 여전히 동네 가게들과 친하지 않다. 이제는 내가 엄마라는 이유가 아니다. 그 이유를 코로나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