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아이의 물음에 꺼내 본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어떻게 알게 되었더라? 잠시 생각해 본다. 아. 여태 살아온 수많은 하루하루 동안 경험하고 경험하고 쌓이고 쌓아서 이렇게나 많은 것을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는 내가 되었구나. 그래서 그 당연한 걸 묻고 앉아 있는 아홉 살짜리 아이의 마음을 순간 답답하다고 느끼며 순간 아 또 뭐라고 대답해야 해라고 느끼며 살고 있구나. 아이는 그 하루하루가 아직 쌓이지 않아서, 그래서 아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내게는 당연한 것을 모르는구나. 갑자기 지난했던 지나온 하루하루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그저 그런 기억도 안나는 숱한 하루가 만들어준 많은 앎들이 내게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얕아졌다.
아이의 질문에 요령 있게 대답해 주려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스스로 경험하고 쌓아가야 하는 걸 너무 이렇게 날름 알아버리는 거 아니야? 부스터 너무 다는 거 아니야? 질투 어린 시선으로 아이를 본다. 물론 내 대답 몇 번에 정말 머리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건 다 침 때문이다. 침 이야기를 하다 말고 이렇게나 생각이 번졌다. 아이가 요즘 자기가 침을 흘리고 잔다고 그랬다. 안 그랬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를 쌓아온 어른답게(침을 많이 흘리고 자본 어른답게)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해 주었다.
"피곤해서 그래. 요즘 안 다니던 학교 간다고 피곤했나 보네. 학교 가고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 가고 요즘 너 하루가 바쁘잖아."
그랬다. 코로나 때문에 학기 중에나 방학 중에나 별다를 것 없이 내내 학교 학원 놀이터 중지, 집에서 뒹굴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 놀이 끝나면 학원에 이러니 힘들지. 이러니 자고 일어난 말간 얼굴, 조막만 한 입술 옆에 하얗게 마른침 자국이 묻어 있지. (그래도 자고 일어난 네 얼굴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침 자국을 보면서 일편 대견스럽다는 마음도 든다. 네가 이렇게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고 있구나. 열심히 자라고 있구나.
오늘도 아이는 학교에 갔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는 오늘 엄마가 학교로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친해진 같은 반 아이와 함께 피아노 선생님 뒤를 쫓아 학원으로 함께 가겠다 했다. 역시 아이도 하루하루 그냥 똥만 싼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