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마 그 말은 부모 된 입장에 선 사람이 한 말일 거다. 우리 자식들의 잘못은 단 하나, 당신들을 덜 사랑한 게 아니라 당신들이 영원히 아니 아주 오래 우리 곁에 있어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
나는 입에 회를 물고서 눈물을 또로록이 아닌 줄줄줄 턱까지 흘리고 있었다. 나는 기어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드라마 때문인지 아니면 그걸 핑계로 쏟아붓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소주의 가장 착한 안주들, 회와 드라마와 함께인 나만의 시간. 아이는 방에서 문 밖 상황은 짐작도 못한 채 잠들어 있고, 우리 집 고양이들은 내 울음소리에 놀라 멀뚱멀뚱 쳐다보다 다가와 냄새를 맡아보는, 간혹 있어 낯설지는 않은 밤의 풍경이었다.
정말 몇 년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우리가 배달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세상이 바뀌었다고까지 할까 싶겠지만 내 세상은 바뀌었다. 보쌈, 피자, 보쌈, 중국집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던 내 외식 메뉴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회까지 배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아니, 그것보다 배달시킨 회가 가서 먹는 것처럼 똑같이 맛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내게는 단골 횟집이 생겼다. 그래서 괜찮았다. 행복...이라고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자주 아픈 아이의 고열과 내내 씨름을 해도, 항상 혼자 아이와 있느라 어른과의 대화에 목말라도, 나와 남편의 생일날(나와 남편은 생일이 한 날이다.) 공항에 묶여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도 행복...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게는 단골 횟집이 있으니까.
고현정과 고두심과 김혜자와 나문희와 그 많은 배우들이 나를 울리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며 꺼이꺼이 울던 날도 나는 괜찮았다. 아이는 사흘 내내 고열에 시달렸고, 나는 그 사흘 동안 쥐어짜지고 있었고 남편은 그날들에도 옆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날들은 지나갔고 꺼이꺼이 울던 날은 한숨을 돌리는 날이었으니까.
아이의 네댓 살 즈음은 내게 독박 육아와 아이의 고열, 디어 마이 프렌즈, 단골 횟집으로 남아 있다. 아이는 그즈음부터 자주 아팠다. 연약함이 무엇인지 보여주마는 듯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이는 열이 올랐고, 꼭 40도를 이삼일 찍어야 내려왔다. 아이가 아픈 주기에 맞춰 매번 아프면 어쩌나 하는 전전긍긍과 결국 또 걸렸구나 싶은 포기, 이제 열 좀 잡히네 하는 안도라는 세 가지 감정을 롤러코스터처럼 겪어냈다. 너무 심한 날들에는 엄마가 왔다. 엄마와 밤을 보낸 어떤 날에 아이는 열이 41도가 되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잊지 못할 위안이 되었다.
아이의 아픈 이야기를 남편은 해외에서 카톡을 통해 들었다. 아이가 처음 입원한 날, 손등에 주사를 꽂기 위해 닫힌 문 안에서 아이가 사십 분 동안 울며 불며 몸부림치는 동안 문 밖에서 함께 울던 순간도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집에 있는 해열제가 듣지 않아 다른 해열제를 찾아 새벽 약국을 돌아다닐 때의 일도, 그동안 나 대신 아이 옆을 지켜주던 엄마의 일도 남편은 카톡으로 알았다. 와볼 수 없는, 옆에 있을 수 없는 마음이 파편화된 글자들 사이에 묻어났다. 나는 시시때때로 아이의 경과를 카톡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 전했다. 나에게 세상의 발전은 이렇게 긍정적이었다.
남편은 참 이상하다 했다. 한 달의 반을 집을 비우는 동안, 딱 그 시기에만 아픈 아이가 신기하다 했다. 미안하다 했다. 고생한다고도 했다. 나는 “아이가 아빠와 함께 있을 때에는 온전히 아빠와 신나게 뛰어놀고만 싶나 봐.”라고 했다. 잠든 아이가 혹시나 또 아픈 건 아닐지 이마에 손을 얹어보며 말했다.
카톡으로 내 인생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도 이야기했다. 엄마와 딸에 대해, 늙는다는 것에 대해,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 밤을 새우는 나에 대해, 자신의 아이를 도우러 달려오는 내 엄마에 대해, 나와 엄마의 내리사랑에 대해, 그래서 아이가 깨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눈물을 질질 흉하게, 고양이들이 와볼 정도로 엉엉 울게 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말 부부도 아닌 것이, 뭐라 명명하기 어려운 상태의 시기를 몇 년 겪으면서도 나는 괜찮았다. 간혹 나를 힘들겠다, 안됐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남편도 아이도 괜찮았다. 남편이 있는 한 달의 반은 많이 놀았고 많이 먹었고 많이 웃었다. 그래서 남편이 없는 한 달의 반에도 많이 놀았고 많이 먹었고 많이 웃었다.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