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찜, 착한 벽은 착한 사람을 부른다

by 유이경

나는 벽들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말들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믿는다.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그 일을 나름 괜찮게 해낸 적이 있다. 우리 가족들이 말이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는 동안 잠시 산 집이었다. 우리는 새 집에서 나름 괜찮았다. 공간이 사람의 태도를 좌우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도 믿는다.


집은 복도가 긴 편이었다. 긴 복도에 나란히 작은오빠와 내 방이 있었다. 안방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안방과 내 방이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건 처음이었다.


현관에서 들어서 복도를 따라 내 방으로 걸어가는 기분이 썩 좋았다. 내내 낡은 집에서만 살다 새 집에서 사는 것도 좋았다. 부엌 쪽 창문을 열면 낯선 산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부엌 창문과 거실 창문을 오가는 바람도 좋았다. 무엇보다 낯설다는 것이 좋았다. 낯선 동네에 낯선 새 집.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나뿐이 아니었다. 가족들 모두 반쯤은 가벼워졌다. 덩달아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평소보다 말이 사근사근해졌다. 항상 날 서 있던 감정도 수그러들었다. 나쁜 말을 흡수한 적 없는 새 벽이어서였을까. 우리는 착한 새 집을 따라 착한 가족 흉내를 잘 냈다. 그중에는 아버지도 있었다.


가장 큰 변화로 느껴졌던 건 아버지였다. 삼일에 한 번은 집을 뒤집어놓던 사람이 잠잠해졌다. 인상 쓰고 기분 나쁜 말만 내뱉던 사람이 종종 엄마와 대화하면서 웃었고, 외식 한 번하면 돈 아까워 몇 날 며칠을 그 이야기만 하던 사람이 주말 저녁에 엄마와 외식을 했다.


아버지가 엄마와 주말마다 외식하던 곳은 바로 근처 아귀찜 집이었다. 그곳이 아버지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사장 내외도 알고 보니 동향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말도 잘 받아주었고 결정적으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포장해 온 아귀찜을 나도 작은오빠도 맛있다며 잘 먹었다. 매운 양념으로 승부하는 다른 곳들과 달리 이 집은 그리 맵지 않았고 다른 감칠맛이 났다. 그 양념의 비밀은 절대 못 알아내겠지만 그 감칠맛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처음 극찬을 한 후로 냉장고 문만 열면 아귀찜이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반색했다. 작은오빠도 나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귀찜을 보면 반가워하며 꺼내 먹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계속 냉장고 안에는 아귀찜이 있었다. 아버지는 중간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뭐 하나 맛있다고 하면 끝도 없이 그 음식을 사 온다. 귀 보다 눈이 밝은 사람인지라 아무리 제발 그만 좀 사 오라고 말을 해도 그 말은 귀에 전달되지 않고 처음에 잘 먹던 모습만 각인되어 유지된다.


그래도 그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그 정도였다. 우리가 잘 먹는다고 계속 같은 음식을 질리도록 사 오는 모습 정도. 충분히 평범하고 사이좋은 가족 사이 같은 정도의 불만이다.


무색의 벽을 착하게 유지시켜놓고 우리는 아귀다툼을 벌이면서 흩뿌려놓았던 말들을 흡수한 벽이 있는 원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몇 개월 동안 딴 집으로 바뀌어있었지만 깨끗하고 하얀 벽지로도 벽의 거친 숨결을 숨길 수는 없었다. 우리는 다시 무거워졌다. 아버지의 나쁜 말도 다시 시작되어 벽에 꽂혔다.


잠시의 행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과장되게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 집이 남긴 건 그런 기억 이외에도 바뀐 입맛이다. 여전히 예전만큼 아귀찜이 좋아지질 않는다.



<사진 출처: 한국음식 200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