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정식과 돼지갈비 사이, 당신과 달리기도 OK

by 유이경

내내 귀찮아 미루고 미루는 청소가 신나게 느껴지는 날이 찾아온다. 창문을 활짝 열고 이불을 털고 평소 듣지도 않는 댄스곡을 크게 틀어놓고 바닥을 닦는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화장실 거울의 얼룩도 지운다. 이른 아침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전철을 타고 이곳에 오고 있을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많다. 이틀 동안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이야기할까 몸만큼 마음도 바쁘다.


예상 시간보다 항상 먼저 나가 있는데도 항상 예상 시간 보다 일찍 나타난다. 전철역 출입구 앞에 나타난 그녀 손에 한 시간 반 동안 매달려 있었을 무거운 짐들이 가득하다.

엄마!!


표를 찍고 나오는 엄마를 몇 년만의 해후 인양 끌어안고 엄마 볼에 뽀뽀를 퍼붓는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하던 코와 코를 비비는 코인사를 한다. 엄마는 얘가 어릴 때에는 안 그러더니 다 커서 이런다고, 사람들 쳐다본다고 밀어내면서도 웃는다.



엄마는 멀어도 내 집에 오는 걸 좋아했다.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해 어쩔 수 없이 따로 사는 것이라는 그럴듯한 이유가 생긴 이후로 엄마는 내가 혼자 사는 것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서울에서는 한 몸 겨우 누일 수 있는 낡은 원룸에서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꽤나 널찍한 복층형 오피스텔에 사는 것도 마음에 들어했다. 엄마는 그 집에서 높은 층고를 가득 채우는 통유리창을 가장 좋아했는데 낮에는 시내 풍경이 한눈에 보였고 주말 밤에는 종종 불꽃놀이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오면 보통 삼십 분이면 끝나는 작은 번화가를 구경하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오피스텔 1층에 있는 돼지갈빗집에서 갈비를 먹고 집에 들어오고는 했다. 낮의 시간도 좋았지만 이불을 나란히 펴놓고 보내는 저녁 시간도 좋았다. 한 달 동안 있었던 엄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서로 모두를 다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보낼 만큼의 이야깃거리는 항상 많았다.


그 날들 중 하루는 엄마에게 비싼 걸 사드리고 싶어 점심밥으로 회정식을 먹기로 했다. 시장님 단골집이라고 유명한 일식집에 예약을 해놓고 엄마가 얼마나 좋아할까 싶어 의기양양했다. 일식집은 우리가 맨날 가는 돼지갈빗집과는 달랐다. 세련되었고 깔끔했고 친절했고 화려했다. 적절한 속도로 다양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왔다. 좋아하는 회를 그것도 고급 회를 종류별로 먹는데, 거기에 엄마를 사드린다는 좋은 명목까지 있는데 이상하게 입에 착착 감기지를 않았다. 왜 잘 안 먹히지? 엄마에게 본심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맛있다 맛있다 하며 먹는데 엄마 표정도 정말로 엄마가 맛있을 때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제야 든 생각. 나는 밥으로 회를 먹은 적이 없었고 엄마는 회를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싼 음식 사드렸네 생색 낼 생각에 엄마가 그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찜찜한 마음을 안고 미안해하는 내게 엄마는 그래도 맛있었다고 위로해주며 나왔다. 어디를 갈까. 배도 꺼뜨릴 겸 엄마와 근처 탄천을 따라 걷기로 했다. 소화가 될수록 마음도 편해졌다. 걸으면서도 쉬지 않는 모녀의 수다 끝에 엄마가 갑자기 내기를 제안했다.

달리기 내기.


엄마는 진심이었다. 들뜬 얼굴을 하고 손바닥에 손톱자국을 남길 것 같은 주먹을 쥐고서 입술을 앙다물고 시합 전 출발 포즈를 취하고 섰다. 내게서 빌려 입은 앙증맞은 핑크색 반팔 티셔츠를 바지 속에 야무지게 넣고서 말이다. 작은 잔디 공원 옆 사람 없는 인도에서 삼십 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는 내기였다.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엄마가 학교 다닐 때 달리기 선수였다고, 그래도 내가 엄마는 이긴다고 옥신각신하다가 벌어진 사단이었다.


진짜 엄마는 달리기 시작한다. 엄마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달리는 엄마 뒷모습을 보며 오소소 솟아난다. 나도 진짜, 달리기 시작한다.


물론 내가 이긴다. 그때 엄마는 육십이 넘은 나이였고 나는 갓 서른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래도 내가 이겨야 하는 나이였다.


엄마는 마음 같지 않네, 숨을 몰아쉬며 웃음을 터뜨린다. 허리를 반으로 접고 깔깔 웃더니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도 전력을 다한 탓에 엄마 못지않게 숨이 차면서도 엄마에게 있는 대로 잘난 척을 한다. 응? 그래도 내가, 응? 엄만 진짜 나 이길 줄 알았어? 엄마는 계속 웃는다. 정말 너무 즐거워 배에서부터 울려 나와 온 몸을 들썩이게 하고 배가 아파지는 그런 웃음이다. 그런 엄마를 보다가 길바닥에 나마저 주저앉아 버린다. 엄마 이겼다고 좋아하는 나도, 나를 이기겠다고 악착 같이 뛴 엄마도 함께 깔깔거린다. 소란스러워진 길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소화가 다 됐다.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엔 엄마나 나나 기력을 너무나 써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건물 1층에 있는 돼지 고깃집으로 직행했다.

이게 최고네.


엄마도 나도 돼지갈비가 최고네 하며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올라간 내 집 유리창으로 그날 밤에도 시작된 불꽃놀이가 보였다. 언제 보아도 감탄하며 좋아하는 엄마 얼굴이 언제 보아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