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세계에 갇힌 나의 언어 구출 작전

by 유이경

얼마 전까지 내가 설거지하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는 뽀로로 시리즈 노래들이었고, 나의 최애 노래는 동요 “내가 바라는 세상”이었다. 내가 주로 하는 말은 “했쬬요”와 “그랬쬬요”였다. (물론 아이한테 이런 아기 같은 말투가 좋지 않다고 하는 건 알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따라 하게 되었다.)


아이가 조금 큰 요즘 매일 하는 숙제는 아이에게 단어 뜻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설명하기 전 나부터 순간 어, 이게 뭐였지 할 때도 있다. 정말 그렇게 어휘력이 떨어지냐고? 아니다. 아니, 맞다. 그때에는 아니었고 지금은 맞다.


아이들이 한참 끝말잇기에 재미 들리기 시작했을 때 아이 친구 엄마가 자신의 아이에게 “저 이모 끝말잇기 잘할 거야, 이모랑 해.”라고 했다. 그 말에 으쓱하면서도 순간 당황했다. (그 순간의 초별로 달라지던 복잡다단한 내 감정을 다시 돌려볼 수 있을 정도로 그때의 마음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아이가 그전까지는 끝말잇기를 할 정도의 어휘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끝말잇기가 나에게는 족히 십 년은 넘었을 시간만의 일이었다. 아이의 친구와 끝말잇기를 시작한 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동안 내 뇌가 텅텅 비어져 버린 것을 알았다. 분명 학교 다닐 때 검사를 하면 국어 분야, 특히 어휘력에서만은 최상이 나왔었는데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는 아닌 게 틀림없었다.


그때에만 어휘력 최상의 과거가 나에게는 더 이상 없다 싶은 순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글을 쓸 때마다 내 어휘가 참 미천하다 깨닫는다.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느 사회에 속해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어 보이는가.


예전에 그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꿈이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흔적을 예전에 읽던 책에서 찾는다. 분명 이 말들을 이해하며 읽었는데 지금은 무슨 말인지 한참을 헤매며 뒤적뒤적 읽는다. 내가 한때 이런 말들을 쓰고 내뱉었다는 것이 영 낯설다.


사라진 어휘력을 채우는 데에는 독서가 최고다. 뇌를 채우자 영차영차. 똑같은 문장을 세 번째 읽고 있다고 해도, 날아가 버린 내 어휘력, 거기에 더불어 문해력 엉엉하면서도 놓지 않고 붙들고 읽는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 문장은 건너뛰어야지 뭐.


문제는 책을 읽고 나서다. 책을 읽은 지 한 달이면 머릿속에서 자꾸 책의 내용이 사라지려고 한다. 다른 중요한 정보가 있으니 얘가 자꾸 자리를 비우려고 하는 것일 텐데, 나에게 지금 중요한 정보는 무엇일까. 여전히 나에게 아이의 세계는 너무나 크다.


나의 일상은 거기에서 거기. 만나는 사람도, 만나서 하는 대화도 거기에서 거기. 사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동안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아홉 살짜리 아이다. 나는 내 일상에 갇힌 언어를 구사한다. 아이가 커나가면 그만큼 나의 언어도 커나갈까.


다른, 다양한 포맷의 글들에 대한 요구가 있다. 타자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로 돌아왔다가 다시 타자에게서 듣게 되는 요구들. 그 요구들을 들을수록 나도 거기에 부응하고 싶어 진다. 부응할 수 있을 때까지 읽고 쓰고 봐야겠지. 나의 하루를 점령하는 직접적인 아이의 세계에서 잠시 잠깐씩이라도 접할 수 있는 간접적인 세계를 좀 더 깊게 만나야겠지. 괜한 다짐을 늘어놓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