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케이스케였다

by 유이경

곧 버스가 출발한다. 무이네에서 베트남 북부로 가는, 하루에 한 번 있는 버스였다. 무이네 시외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버스에 오르느라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버스에 짐을 싣고 있는 사람들, 뒤늦게 버스표를 사려고 뛰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헤치고 그를 찾아다녔다.


그를 처음 만난 것도 시외버스 정류장이었다. 호찌민에서 무이네로 떠나는 버스가 있는 곳이었다. 1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못하는 영어로 겨우 알아내 기다리는 중이었다. 베트남 여행 삼일째 되는 이른 아침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잔뜩 긴장한 채 서성이고 있는데 5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영어로 ‘무이네’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버스표를 받는 사람에게 다가가 보니 어떤 남자가 이 버스가 무이네에 가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같은 목적지로 가는 불안한 여행객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비어 있던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케이스케라고 했다. 나보다 서넛 어린 이십 대 후반의 일본 남자. 그는 영어를 아주 잘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승객들이 하나둘 잠들었고, 우리는 덜컹거리는 길 위에서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도 나처럼 베트남은 처음이라고 했다. 어제 호찌민에 도착해 오늘은 무이네에서 하루 묵고 바로 북부로 갈 거라고 했다. 나는 바닷가 썬배드에 찰싹 붙어 이박삼일을 보낼 예정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느리게 이어졌다.


무이네의 바닷가는 한적하고 리조트들은 한산했다. 바닷가를 끼고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꿈꾸던 풍경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었다. 케이스케는 화이트 샌드 투어를 하러 간다고 내게 같이 가자고 했다. 난 무이네에 화이트 샌드가 있는지도, 그게 뭔지도 몰랐다. 내가 이 여행에서 바라던 모든 것은 여기에 있었다. 저녁 약속을 정하고 헤어졌다.


적당히 즐겁고 살짝은 긴장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식당은 여행객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낯선 언어로 된 메뉴판을 탐독하다가 뭔지도 모르고 결국 시킨 것이 새우구이와 새우찜이었다. 나온 요리에 어이없어 웃음이 터졌지만 맛을 보곤 둘 다 한동안 새우껍질만 열심히 벗겼다. 그는 일본 도쿄의 한 은행에 다닌다고 했다. 휴가 때마다 혼자 이곳저곳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나는 혼자 여행이 처음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케이스케가 내 전공을 물어봤다. 나는 문학이라고, Literature라고 말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발음이 이상해서 그런가 휴지에 스펠링을 써줬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화 중간중간 의미가 끊어졌다.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둘 다 손에서 새우 냄새가 진동했다.


맥주 한 잔으로는 부족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자리한 바로 이동했다. 어두운 실내에 야자수 잎들과 작은 조명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바에 앉아 평소에 마시지 않는, 고운 색들이 아름답게 섞여 있는 칵테일을 시켰다. 웃음이 많아졌고 마음이 편해졌다. 서로에게 낯선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어둠과 술의 힘을 빌어 가까워졌다.


케이스케가 색다른 제안을 했다. 그냥 알아듣거나 말거나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해 보자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우리는 좀 더 서로의 표정과 손짓을 유심히 살폈다. 이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걸까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그의 말들 중에 간단한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일본 드라마를 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 가만가만 이야기를 듣다가 “아, 나도 그거 알아.”, “맞아 맞아.”하고 맞장구를 치니 그가 놀랐다. 자기 예상과 다르게 대화가 진행되자 그가 당황해했다. “왜 나만 못 알아들어!” 분해하는 모습에 나는 깔깔 큰소리로 웃어댔다.


서로의 나라에 꼭 가보자고 했다. 서로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으면서 연락하자고 했다. 그가 한국에 오면 내가, 내가 일본에 가면 그가 가이드를 해주자 했다. 서울에 좋은 곳이 정말 많다고 데려가 주겠다고 내가 큰소리치자 그도 질세라 도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놨다. 우리는 둘 다 신나 있었다.


맥주를 두 잔씩 더 마셨다. 어느새 손님들이 모두 가고 우리만 남아 있었다. 바텐더는 티브이 소리를 크게 해놓고 보고 있었다.


밤바다의 고요함이 급작스러웠다. 소란스럽던 바에서 나온 참이었다. 바닷가의 어둠이 우리를 가라앉혔다. 모래사장을 나와 드문드문 불이 밝혀진 어둑한 길을 따라 말없이 걸었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고 생각이 많아졌다. 많은 생각 속에 낯선 내가 있었고 갑작스레 두려워졌다.


“내일 아침 같이 먹을래?”

침묵을 깨며 케이스케가 꺼낸 말이었다.

“아니, 그냥 우리 따로 먹자.”


경계심에 바짝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날 서게 대답했다. 숙소로 함께 걸어가는 짧은 길이 멀고 무거워졌다. 가까워졌던 시간만큼 우리 사이가 뒤로 물러난 기분이었다. 여행지의 마법이 깨졌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 묵는 일정이었다.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조식 뷔페식당으로 가봤다. 다른 여행객들처럼 여기에서 아침을 먹겠지 싶었다. 내가 천천히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류장에 그는 없었다. 사람들로 혼잡한 사이사이를, 버스 창문 하나하나를 기웃거리며 찾아다녔다. 그를 만나지 못한 채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인 버스가 떠났다.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여행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궁색한 변명을 짧은 영어 몇 문장에 담았다.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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