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말한다. 짐을 싸들고 무조건 카페로 가라고. 물론 카페에서만 글을 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작가 장벽’에 부딪혔을 때 카페를 이용했다고 말하면서 나오는 이야기다. 무조건 약속을 잡아 밖으로 나와 카페에 앉아 친구가 오는 동안이라도 쓰자로 막혀 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카페에서 글쓰기가 작가에게 유용했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게 하는 장소가 카페가 아니라 자기 방의 책상일 수 있다. 아니면 그냥 식탁일 수도 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을 때 글을 쓰게 하는 장소라면 어디든 좋다. 나에게는 그 장소가 골드버그처럼 카페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이른 오전에 카페에 가서 운이 좋다면 내가 좋아하는, 항상 앉는 자리에 앉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노트북 오른쪽에 두고 뚜껑을 열어 한 김 식힌다. 에어팟을 귀에 끼고 빌 에번스 노래로 꽉 찬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그러면 모든 것이 완벽해진다. 카페에서 글을 썼던 헤밍웨이나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J.K 롤링 같은 글이 완벽한 그 순간, 내게도 쏟아져 나오면 좋으련만. 그건 순간이 완벽하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내 수준에 맞는 글이라도 나오는 것에 만족한다.
카페의 적당한 소음이 좋다. 내가 내지 않는 낯선 소음들과 귀에 꽂은 잔잔한 재즈 음악이 섞이는 것이 좋다. 두 시간 정도밖에 앉아있을 수 없는 시간 제약도 좋다. 두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긴장감은 나를 좀 더 집중하게 만든다.
집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좋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나의 식탁이라도 눈을 들면 치울 것이 산더미,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자꾸 할 일이 생각나서 엉덩이를 들썩인다. 그래, 세탁기라도 돌려놓고 하자, 잠깐만 건조기 안에 수건을 아직 안 개었네, 그럼 수건을 개 놓고, 수건을 개려고 하니까 바닥에 고양이 털이 많네, 그럼 여기만 청소기로 좀 돌리고. 끝이 없다. 글이 자꾸 끊어진다. 생각은 멈춘다. 글쓰기 딱 좋은 아침 황금 시간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기를 멈춘다. 수레바퀴에 기름을 칠해주는 것은 집이 아닌 공간, 적당한 낯설어 날서게 하는 공간, 그리고 커피 한 잔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말한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하나의 속임수, 이따금씩 풍경에 변화를 주겠다는 전략이다.”
나는 그 속임수가 좋다. 그 속임수가 그립다. 본의 아닌 자체 자가격리를 주기적으로 겪으면서 느끼는 것은 카페의 효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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